우리는 자랑스러운 단군의 자손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햇빛이 없는 동굴에서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지만 곰을 해냈다. 그래서 곰이 인간이 되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우리 시조 단군신화 이야기다. "우리는 인내심이 강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랑스러운 단국의 자손이다." 이 문장은 참일까.
직장 동호회에서 GTP를 배우는 동료가 있다. 시작할 때는 회원이 많았는데 몇 달 만에 이탈 회원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회원을 추가로 모집한다며 옆 동료에게 관심 있으면 함께 배우자고 넌지시 말을 건다.
쳇 GTP를 배워 놓으면 업무나 일상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최신기술이다. 인터넷 못지않게 GTP가 생활곳곳에서 사용될 기술임이 분명하다. 비롯 IT지식이 없을지라도 이 정도는 상식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쳇 GTP에 관심이 많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쳇 GTP도 인공지능도 아니다. 직장동호회는 더더욱 아니다. 지속성, 끈기를 말하고자 한다. 쳇 GTP동호회 회원처럼 무엇이 좋다고 하면 처음에 큰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 보였던 열정과 관심은 온데간데없다. 관심의 온도가 너무 빨리 식는다. 그리고 마침내 관심을 둔 분야에서 멀어지고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고민하고 인내하고 끈질기게 한 곳에 붙어 있지 못한다. 조금 해 보고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이내 멈춘다. 우리는 새로운 것에 늘 관심이 많지만 관심을 지속해 나아가는 기질은 부족하다.
학습에 더더욱 이런 현상이 짙다. 진도는 안 나가고 성적 향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지루함의 연속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이제 그만하라고, 더 해봤자 잘 안될 거라고, 부질없는 짓이라고, 이제 멈추라고 끝없이 속삭이다. 마침내 수험생은 악마의 속삭임에 항복한다.
그리고 떠난다. 이 산이 아닌가 봐, 다른 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래봤자 다른 산도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산 중턱에서 내려온다. 악마의 속삭임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달콤하다. 인간은 지루함을 절대로 못 참는다는 사실을 악마는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반복의 산을 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별 성과 없이 끝난다. 단순반복 말고 한 방에 해결해 주는 비법을 찾아 끊임없이 탐색하지만 그런 것은 애초에 없다. 그 어떤 분야든 기본기를 다져야 한다. 그 과정을 생략하거나 건너뛰고 본선에 나갈 수 없다. 기초체력이 없는데 어떻게 90분간 축구장에서 뛸 수 있겠는가.
빨리빨리 해결하고 결단이 나야 직성이 풀린다. 성질 급한 직장 상사가 떠오른다. 빨리 방법을 내놓으라고 윽박 치른다. 기다릴 시간이 없다. 문제가 터지면 직장 상사도 조직도 언론도 모두 한마음으로 얼른 해결하라고 경쟁하듯 언성을 높인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하다. 더 큰 문제가 터진다. 그 사례가 잼버린 사태다.(새만금에 매립을 마친 곳이 있었는데 굳이 용도까지 바꾸면서 무리하게 대회 장소로 정한 게 누구 책임이냐? ), 공방이 심상치 않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혹시 참을성 없는 우리는 곰의 후손이 아니라 호랑이 자손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실망은 이르다.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단순 단복을 극복한 산 증인들이 우리 곁에 있다. 우리는 그들을 달인이라 부른다. 자동차 복원 달인, 다슬기 채취 달인, 유리공예 달인,,, 그중 한 분이 떠오른다. 집필 7년 만에 완성한 <태백산맥>, 6년 걸린 <아리랑> 저자 조정래 소설가이다. 그는 20년 동안 매일 16시간 글을 쓴 곰의 후손이다.
인생이란 지치지 않는 줄기찬 노력이 피워내는 꽃이라는 것을 체득시켜 주고 싶었다. 젊은이들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성실하게 노력하라.' '꾸준하게 노력하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태백산맥>을 베끼기를 택했다. 이것이 조정래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필사시킨 이유라고 여성시대 인터뷰에서 말했다.
베끼기 만큼 단순하고 지루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조정래 작가는 동아일보(2015.6.6)에서 필사의 효과를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지식인으로 살아가려면 자기의 생각을 글로 쓸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소설을 베끼다 보면 분명히 문장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책을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의 필사가 독해에 더 도움이 된다." 이런 사고를 가진 그는 분명 인내심 강한 단군의 자손이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50606/71671472/1
소설을 필사하든 빵을 굽든 무엇을 배우든 간에 지루한 과정을 견뎌야 좋은 결실을 맛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그런 인생을 살다가 소리 없이 그냥 떠난다. 그런 생을 원하지 않는다면 한 가지를 잡았으면 절대 놓치지 말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말 나온 김에 본 주재를 뒷받침해 줄 근거를 추가한다. 무등산을 끝없이 오르내리며 체력을 단련시켰다는 야구의 전설이 된 이종범 선수, 자녀 둘을 잃고 이를 잊기 위해 수년간 강의에만 매진했다고 고백한 메가스터디 창업주 손주은 회장, "너는 좋겠다. 글재주가 있어서." 친구 말에 "나도 열심히 했거든."이라고 항변한 유시민 작가(대학생부터 줄기차게 글을 썼다고 한다), 차범근 선수이래 최고 축구선수로 인정받고 있는 손흥민 선수도 우리가 자랑할 만한 끈기 있는 단군의 빗줄이다.
손흥민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축구에서 기본 훈련은 끊임없는 반복 훈련인데 이러한 반복된 지루함에 선수들은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 지루함을 이겨내느냐 못 이겨내느냐 차이로 좋은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로 나누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