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우울한 추석

kddhis 2023. 9. 3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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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을 못하시고 치매 증상이 있으신 어머님을 작년에 내가 사는 도시 요양원으로 모셔왔다. 집으로 모셔야 하지만 부부가 직장을 다니는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집 근처 요양원에 계신다. 불효자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변명일 수 있지만 요양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나보다 어머님의 병 수발을 더 잘하신다.

 

 

오늘은 추석이라 어머님을 집으로 모셔 왔다. 어머님은 기력이 없으시다. 자동차로 20분 걸리는 이동거리에도 무척 힘들어하신다. 어머님은 올해 84세다. 하루가 다르게 허약해지는 어머님을 뵙는 날이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울 뿐 달리 해드릴 게 없다.

 

 

차 안에서 어머님은  어디가 아프신지 얼굴을 찡그리고 있기에  "어머님, 어디 아프세요?"라고 물었다. 어머님은  "아니다. 괜찮다." 하신다. 내가 보기에 괜찮은 것 같지 않아 제차 묻지만 대답은 똑같다. 

 

 

어머님은 휠체어를 타시고 어렵게 집안으로 들어오셨다. 한 발 짝국도 못 걸으시기에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하시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났지만 기력이 쇠하셔서 반가운 인사는 둘째치고 침대에 누우셨다

 

 

잠시 잠을 청하시고 일어나서야 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으시며 모처럼 웃으셨다. 어린 시절 어머님과 얽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우리 모자는 오랜만에 긴 대화를 했다. 

 

 

점심을 드시고 또 휴식을 취하시고 다과를 드시고 다시 요양원으로 모셔다 드렸다. 요양원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님께 물었다.

 

어머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84이다.

세월 빨리 지났지요?

글쎄다. 내가 80이 넘었다.

 

 

"죽어야 할 텐데, 너희들 고생시킨다. 돈만 축낸다. 얼른 죽어야 할 텐데."라는 말씀을 어머님은 자주 하신다. 인간 수명을 어찌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인명은 재천이라 했다.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나약한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요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님은 눈을 꼭 감고 계셨다. 왼손으로 운전을 하고 오른손으로 어머님 왼손을 꼬옥 잡았다. 어머님도 힘없는 손으로 내 손을 힘주어 잡으셨다. 힘주신 어머님의 손을 통해 어머님의 자식 사랑이 전해 왔다.

 

 

가는 세월 막을 수 없고 나이 들어 늙으면 노세하니 어쩌란 말인가. 어린 시절 해질 무렵 동네 어귀에서 저 멀리 엄마가 보이면 반가워서 달려가 엄마 치마 안으로 들어가 안도하고 행복했던 그 시절이 떠오르니 눈물이 핑 돈다.

 

 

추석 날이 다가오면 엄마는 한과, 송편, 인절미, 육전을 만드셨다. 평상시에는 맛볼 수 없는 사과, 배, 소고기, 굴비 등도 사 오셨다. 추석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풍성했다. 그 시절에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은 1년에 딱 두 번,  바로 추석과 설날이었다. 

 

 

어릴 적 추석 날은 좋았던 일들로 가득했다. 엄마는 어려운 살림이지만 추석 때는 항상 새 옷을 사주셨다. 가끔은 도시에서 고향을 찾아오는 삼촌들도 조카 선물과 용돈을 주셨다.

 

 

지금이야 먹을 거나 입을 게 풍부해서 평상시에도 잘 먹고 잘 입고 다니기에 추석이라고 특별한 게 없지만  60, 70년에는 아이들에게 새 옷과 명절 음식은 특별하고 귀한 때때옷이었으며 며칠간 먹을 수 있는 군것질 걸리었다. 

 

 

오늘 추석 날, 그 옛날 어머님으로부터 받은 보살핌과 사랑을 되돌려 들릴 방법 없다. 기껏해야 어머님께 밥 한 끼 드리고  사과 몇 조각드리는 게 전부다. 기력이 쇠하여 그마저도 다 못 드신다. 가는 세월이 원망스러운 우울한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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