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dhis 2023. 10. 13. 21:18
728x90
반응형

휠체어를 타신 어머님을 모시고 대학병원 2층 치과에 올라갔다. 간호사는 우리를 알아보시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여러 번 이 치과에 와서 우리가 낯이 익은 탓에 간호사님은 우리를 살갑게 맞이해 주셨다. 간호사 선생님은 물론이거니와 치과 선생님도 친절하시고 예의 바르시며 자상하시고 실력도 대단하다.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주고 싶다.

 

 

30여분 치료를 받으신 어머님은 힘이 드셨는지 "이아고 아이고"를 연발하신다. 어머님이 힘에 부칠 때 내시는 소리다뵐 때마다 자주 들어서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병원을 떠나 차 안에서도 아이고아이고 소리가 끝이 없다. 웃어 보고 어머님 손을 꼭 잡아보지만 헛수고다. 노환으로 아프신 걸 어찌하란 말인가. 내 마음도 함께 아프다.

 

 

동생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어머님을 보살필 형편이 안 돼서 작년 1212일에 내가 사는 도시로 어머님을 모셔왔다장남의 책임감 때문인지 연로하신 어머님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장남이신 아버님도 저처럼 책임감 때문에 지극 정성으로 할아버님과 할머님을 돌보셨을까.  6형제 중 장남이셨던 아버님은 시골에서 고된 농사일을 하시며 80 평생 조부모님을 모시면 모질게 사셨다.

 

 

아버님이 고생하신 그 기억 때문에 고향집이 싫어졌다.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좋은 기억은 별로 없고 경제적으로 찌들고 힘든 그래서 가슴 아픈 기억 밖에 없다. 행복하지 않은 과거로 가득 찬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아버님은 조부님과 불화가 끝이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일방적으로 조부모님이 아버님을 힘들게 하셨다. 조부님은 일찍 농사일을 아버님에게 맡기시고 농사일을 하지 않으셨다. 농사일은 다 아버님 몫이었다. 하지만 경제권은 조부님이 쥐고 계셨기에 아버님 나이 40까지 이발비 등 용돈을 조부님께 받아 쓰셨다. 특히 조부님은 자식 사랑이 부족했기에 아버님의 고통은 더 심하셨다. 자기밖에 모르신 조부님,

 

 

힘든 농사일에다 까탈스러운 노부모를 모신 아버님은 효자셨다. 도시로 떠난 동생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음에도 장남이신 아버님은 조부모님을 끝까지 모셨다. 세월이 흘려 이제 내가 아버님 입장이 되었다. 아버님은 돌아가셨지만 어머님은 보살핌은 내 몫이 되었다.

 

 

고집쟁이 조부님 수발에다 아들 넷을 키우시면서도 자식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시고 고생 죽 싸게 하다 세상을 등지신 아버님,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셔서 가족을 위해 80 평생을 사셨던 아버님은 기꺼이 자신 한 몸을 희생시키셨다.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당신은 영원한 저의 천사이십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