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가는 날
여유를 부려 약속시간 9시보다 10분 늦게 요양원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토요일이데도 출근하는 아내를 사무실에 바래다주고 주유소까지 들린 탓이다. 요양원 사무실 앞 복도에 놓여 있는 외출대장에 서명하고 어머님을 모시고 미용실에 왔다. 오늘은 어머님 파마하는 날이다.
미용실 원장은 우리보다 먼저 온 손님에게 파마약을 바르고 있었다. 대기 의자에는 80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손자 결혼식에 가기 위해 커트하려 왔다고 하신다.
다음 차례는 어머님이다. 어머님은 대기 의자에서 거울 앞 미용의자까지 저의 부축을 받으며 힘들게 이동해 의자에 앉았다. 어머님은 4년 전 2019년 10월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신 이후 재활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못 걸으신다.
미용실 손님들은 마치 겨울나무 껍데기처럼 쭈글쭈글하고 주름이 푹 파인 건조한 앙상한 얼굴의 70. 80대 할머님들이다. 조금이라도 이뻐 보이려고 아니면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머리 하려 아침 일찍 이곳에 온 것이다. 우리 어머님도 그중 한 분이시다.
파마약을 바르고 1시간 30분 넘게 기다려야 원하는 형태의 머리모양이 나온다. 그다음 머리를 감고 손질해야 비로소 끝이 난다. 9시 30분경에 미용실에 들어왔는데 11시 30분이 넘어가고 있다. 무료한 2시간이 흘렸갔다. 드디어 어머님 머리 손질이 다 끝이 났다. 나도 피곤하지만 어머님도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있어서 그런지 힘든 표정이 역력했다.
함께 점심 먹자고 약속한 아내에게 연락이 없다. 전화도 받지 않고 카톡으로 연락해도 응답이 없다. 미용실에서 가까이에 있는 추어탕 집으로 갔다. 추어탕에 돌솥밥이 함께 나왔다. 솥에서 밥그릇으로 밥을 부는데 어머님은 공깃밥 양이 많다며 조금만 덜어 달라고 하셨다. 그러나 배고프셨는지 한 그릇을 다 드셨다.
어머님은 장시간 앉아 계셔서 에너지가 소진되어 영양보충이 필요했던 것이다. 휴식도 필요했다. 바로 요양병원에 모셔다 드렸다. 다음 주 목요일에 치과 병원에서 다시 뵙자고 인사를 드리고 요양원을 떠났다.
어머님은 아들 4형제를 두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동생들이 어머님을 돌 볼 형편이 안돼 지나 12월 고향인근 도시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님을 내가 살던 곳으로 모셔 왔다.
옆에서 도와주는 아내도 있지만 병원, 미용실 등 어머님과 관련된 여러 일들은 온전히 내 몫이다. 아버님이 그랬듯이 장남 역할이라 나는 생각한다.
작은 아버지들은 명절 때 가끔(어쩔 때는 몇 년 소식이 없었던 때도 있었다.) 도회지에서 선물을 사들고 고향집에 왔다.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좋아하셨다. 또한 가끔 아주 가끔 서울 구경도 시켜 주시고 용돈도 드렸을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런 작은아버지들을 좋게 보았다.
하지만 80 평생 시골에서 농사짓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사셨던 아버님에게는 얼마나 고마워했을까. 아마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장남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유교사상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릴 때부터 옆에서 지켜본 그분들(조부모, 부모, 작은아버지들)의 생활과 모습에서 보고 느끼고 깨달은 내 생각이다.
할아버지가 고통사고 당해 병원에 입원할 때 곁에서 병수발한 것도 아버님 이셨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년 동안 똥, 오줌 받아낸 것도 아버님 이셨다. 그 도시에 작은아버지들이 사셨는데도 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짓다 말고 달려와 병수발하셨다. 작은아버지들이 병문안을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들은 병수발을 안 하셨다. 할아버지의 병수발은 작은아버지들도 손자도 며느리도 아닌 장남인 아버지가 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작은아버지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아버님은 아픈 몸(허리병와 귓병)으로 힘든 농사일 다 하셨고 까칠하고 고집 센 할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평생을 모셨는데 이걸 인정받지 못한 아버님을 생각할 때면 너무도 답답하고 속이 상했다.
이야기가 갑자기 아버님으로 옮겨 같다. 아버님을 생각할 때면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고 떠오르고 쉽지 않은 추억과 기억이 내 머리에 가득 차고 감정을 주체 못 한다.
요양원을 나오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 사무실 주차장에서 만나 함께 집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아내는 점심 먹으려 식당에 왔다며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1시간 넘에 차 안에서 기다렸는데 너무 지루해서 잠깐 눈을 붙였다. 그래도 소식이 없다. 오줌도 마렵고 바람도 셀 겸 밖으로 나와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분이 지났을까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먼저 집에 가라는 메시지다. 온몸에서 김이 빠지고 맥이 풀렸다.
집에 도착하니 3시 30분, 힘들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할 일을 해야 했다. 씻고 글 쓰고 책 읽고 저녁밥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가 흘려갔다.
침대에 누워 꿈나라로 가기 직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요양원, 미용실, 주차장"에서 오늘 대부분 시간을 써버렸다. 그 시간이면 한편 이상 글을 쓸 수 있고 100쪽 이상 글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인데 아까웠다.>. 나도 별수 없는 속물이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어머님을 돌보지 않으면 돌 볼 사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