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공부가 그렇게 하기 싫은가요.

kddhis 2023. 11. 2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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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도서관에 갈 때마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나 만화책을 보는 학생을 두세 명은 꼭 본다.

 

 

이들 학생은 수업을 마치고 공부나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온 것이 분명한데 딴짓하는 불량 학생처럼 보인다. 얼마나 공부가 하기 싫었으면 이곳에서 잠을 잘까. 한 편으로는 잠자는 학생들이 이해가 된다. 내 과거 때문에 이심전심의 마음이 생긴 것이다.

 

 

나도 예전에 이 학생들처럼 도서관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잠만 잤다. 먼 옛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때 왜 그리 공부가 싫었는지 책상 앞에 앉으면 졸렸다. 그러면 교과서를 베개 삼아 머리를 처박고 자곤 했다.

 

 

어떨 때는 침이 책을 적시는 경우도 있었다. 자고 나면 점심시간이 되고 밥 먹고 또 자고 공부는 없고 잠만 있었다. 그렇게 하루, 한 달, 1년의 세월을 보내고 나면 성적은 없고 아쉬움만 남았다. 아하, 통제라.

 

 

공부하기 싫은 나는 만화방에서 살았다. 동네 만화방에 있는 만화책을 모조리 보았다.(자랑은 아니다. 심훈의 상록수도 읽은 기억도 난다.) 그래서 매일 만화방 아저씨에게 신간 나왔나요.”라고 묻곤 했었다.

 

 

그때 만화책을 보고 감동받아 눈물을 흐린 적도 있었다. 꺼벙한 눈을 가진 주인공 구영탄이 나온 만화였다. 그때는 만화 작가가 누군지 몰랐지만 지금 검색해 보니 만화계에서 쾌 유명한 '고행석' 만화가다.

 

 

졸린 눈을 가진 구영탄은 처음엔 어려움에 빠져 곤란을 겪지만 마침내 난관을 헤쳐 나가 결국 고난을 극복하는 해피엔딩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구영탄은 만화에서 천재로 나온다. 야구 천재, 축구 천재, 공부 천재,,,  내가 ‘구영탄을 좋아한 이유는 그런 능력이 부러웠던 것은 아닐까.

 

 

그때 구영탄이 나오는 만화책은 죄다 보았다.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박은하이다. 이쁘게 그린 여학생 캐릭터다. 나는 당시 이 만화책을 재미났게 읽었다. 하지만 그때 만화책을 물리도록 봐서 그런지 그 후 단 한도 만화책을 읽지 않았다.

 

 

나는 공부한답시고 독서실을 다녔다. 다 아시겠지만 학생이 독서실을 다닌다고 다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폼만 잡았지 공부는 뒷 전이였고 엉뚱한 짓하는 얼간이 학생에 불과했다.

 

 

독서실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무협지를 봤다. 무협지를 얼마나 읽었던지 무협지 책장을 넘기는 게 달인 수준이었다. 그렇게 빨리 책을 읽었던 기억이 없다. 지금도 그렇게 책을 읽지 못한다. 이마에 선명한 영화 스크린이 그려졌을 정도로 무협지에 푹 빠져 지냈다. 이처럼 공부와 담쌓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군대 제대한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겨우 식당에서 알바 일뿐이었다. 그 생활을 8개월 동안 했는데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꿈도 희망도 없었다. 

 

 

24, 답답한 청춘이 따로 없었다. 어두컴컴한 밤길을 혼자 걷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번개를 맞은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불현듯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싶어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88 올림픽이 열리던 화창한 봄날, 짐을 꾸려 독서실로 들어갔다. 난 독해졌다. 졸지도 책상에 엎드려 자지도 않았다. 무협지나 만화는 말할 것도 없고 4년 동안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딱 한 번 친구 2명이 독서실로 찾아와 근처 다방에서 나는 우유, 친구 둘은 커피를 시켜 마신 일은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손가락이 벗 껴질 정도로 쓰고 또 썼다. 집중력이 약했기 때문에 계속 연습장에 써야만 했었다. 그해 여름, 딱딱한 나무 의자에 오래 앉아 있어서 엉덩이에 종기가 난 적도 있었다. 공부하지 않았던 과거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독해졌다.

 

 

그곳 독서실은 2인실로 대학을 졸업한 형이 있었다. 그 형은 나름대로 공부를 잘했는지 고시공부를 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반강제로 고시공부를 강요한 듯했다. 이 화장한 봄날에 하기 싫은 고시공부를 한답시고 내 옆 책상 밑에서 매일 잠만 잤다. 그 후 형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고시를 포기하고 취업했을 것으로 추축해 본다. 공부를 안 했으니까..

 

 

나는 요즘 독서실이나 도서관에서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나 만화책을 읽는 학생을 보면 내 못난 그 시절이 떠오른다. 얼마나 공부하기 싫을까 하는 동정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러면 안 되는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뒤늦게 마음을 고쳐먹고 게으른 못된 습성을 조금은 고쳤지만 빈둥거리며 보낸 학창 시절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고 빈 공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가 없는데 그 빈 공간을 어떻게 메꿀 수 있단 말인가. 오직 후회만 그 공간을 차지할 뿐이다.

 

 

어디 학창 시절뿐이겠는가. 어느 시기나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처럼 인생이 허망해진다. 아마 꿈이 없었기 때문에 그 시절을 재미없게 보내지 않았을까.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저 멀리 잠자는 학생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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