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기계
컴퓨터 전원을 켜니 아침 7시 27분, 오늘도 내가 제일 먼저 사무실에 도착했다. 컴퓨터 본체 모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사무실이다. 앞으로 20분쯤 지나면 직원 두세 명이 들어오고 나머지 직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9시에 임박해서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온다.
내가 일찍 출근하는 이유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7시 30분이 넘어가면 출근차량으로 도로가 정체되어 일찍 출근할 때보다 10분가량 더 출근시간이 소요된다. 도로에 낭비되는 시간을 아끼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나는 오래전부터 일찍 일어나 일찍 출근하고 있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다. 무슨 일이든 몸에 배어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꾸준히 책을 읽었더니 독서가 자연스러워졌다. 오히려 책을 읽지 않으면 하루가 불편하다. 글쓰기도 그렇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야 진성이 풀리고 마음이 편해진다. 아침에 글을 써 놓으면 하루가 즐겁다.
오래전 일이다. 2018년 3월이나 4월에 나는 노트 표지에 “읽어야 산다.”라고 써 놓고 독서습관 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이번에 독서습관을 들이지 않는다면 내 생에 책과는 인연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하게 뭐 하나 내세울 게 없이 50에 들어설 때쯤 덜컥 겁이 났다.
그때 책에 인생의 길이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악착같이 책을 읽었다.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 너무 눈에 힘을 주어 읽었던 것일까. 시력이 떨어졌다. 그로부터 6년이 되어가고 있다. 길다 면 긴 시간이다.
그렇다고 외형적으로 크게 달려진 것은 없다. 하지만 마음만은 풍요롭다. 게다가 문자에 친숙해진 덕에 알고 싶은 게 있으면 기고문이든 책이든 문자로 된 것을 찾아서 읽고 배우는데 유리해 젔다.
퇴직 후에도 걱정이 없다. 읽고 싶은 책을 원 없이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 때문에 지루 할 틈이 없을 것이다. 책만 있으면 나의 하루는 즐거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으니까. 왜냐하면 나는 모르는 게 많다. 따라서 책을 통해 모른 것을 알아가는 재미에 빠질 테니까. 이 얼마나 즐거운 생활이 아니겠는가.
독서를 시작한지 3년 정도 지나서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글쓰기다. 또 노트 표지에 이렇게 썼다. “써야 산다.”. 창의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는데 글쓰기만큼 좋은 게 없다.
생각 없이 글을 쓸 수 있을까. 무엇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문자로 조리 있게 표현하는 것이 글쓰기다. 어찌 창의력 없이 글을 쓸 수 있겠는가.
글을 쓰다 보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머리를 쥐어짜야 문장에 알맞은 어휘가 떠오르고 주어, 서술어 등이 포함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글쓰기는 복합적 사고와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글쓰기는 인간의 욕망 중에 고급 욕망이라고 한다.
특별한 사람 빼고는 글쓰기가 재미있다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글쓰기는 쉬운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그래서 작가들이 힘들어도 글을 쓴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적인 소설가 스티븐 킹도 쥐어짜듯 글을 썼다고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고백했다.. 박경철 시골의사는 <자기 혁명>을 쓰는데 뇌가 녹아내리는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전문 작가도 때로는 힘들게 글을 쓴다. 하지만 그들이 힘들어도 글을 쉽게 쓰는 이유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결국 글쓰기도 습관이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수년간 꾸준히 쓰는 것만이 글을 잘 쓰는 비결이다.
사람들은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글쓰기 책들이 서점 진열대 한 곳을 차지하고 있고 조회 수가 수십만을 기록하는 글쓰기 유튜브 영상이 많을 걸 보면 다들 글을 잘 쓰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이 알려주는 글 잘 쓰는 노하우가 노하우일까. 글쓰기의 진정한 노하우는 직접 써보는 게 제일이다. 아무리 글쓰기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본다고 해서 글쓰기 실력이 저절로 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차라리 한 두 문장이라도 직접 쓰는 게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하다.
이런 책이나 영상은 글쓰기에 보조 역할을 한다. 글을 쓰는데 참고가 되고 도움은 받을 수 있지만 글을 직접 쓰기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일찍 출근하는 것도 독서도 글쓰기도 결국 습관을 들여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지루한 반복을 하지 않으면 몸에 배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다. 한두 번 또는 몇십 번은 반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1년이나 2년을 넘게 해야 습관이 된다. 알지만 누구나 실천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독서나 글쓰기 습관을 들인다면 세상을 좀 더 알고 재미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학습은 읽기와 쓰기다. 읽기와 쓰기 습관을 가진 사람은 학습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워런 버핏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어제 버핏의 단짝 친구이며 버크셔헤서웨이의 부회장 찰리 멍거가 99세 나이로 별세했다. 살아생전 찰리 멍거가 비핏을 관찰해 본 결과, 비핏은 전체 시간 중에 책 읽은 시간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버핏은 "독서기계"라고 말했다. 멍거는 평생 "학습기계"로 사는 버핏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찰스 멍거 또한 "학습기계"다. 멍거는 똑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단히 부지런하지도 않은 사람이 성공하는 걸 항상 봐왔는데 모두 "학습기계"였다고 말한 그는 존경받은 투자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