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유학 9
12월 이맘때였을 것이다. 연말을 맞아 2007년 5월에 필리핀으로 떠난 지 7개월 만에 한국으로 잠깐 귀국했다. 필리핀으로 떠날 때 우리 아파트를 임대했기에 마땅히 묵을 곳이 없어 장인어른 집에서 10일 정도 머물렀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귀국한 게 아니었다. 연말을 맞아 겨울 휴가를 온 것이다. 우리 가족은 갑작스러운 필리핀 생활에 심신이 지쳐있었다. 필리핀은 고온 다습한 아열대성 기후로 덥다.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는 나라다. 우리 가족은 필리핀의 환경에 적응하는 게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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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기간 동안 용산 전자상가에서 전자사전을 사고 서울 투어버스를 타고 서울 관광을 다녔다.. 2007년 당시에는 전자사전으로 학생들이 영어공부를 했던 시절이다.
짧은 연말 휴가를 보내고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필리핀 공항에 새벽에 도착했다. 필리핀 공항에서 입국절차를 밟는데 공항직원이 리턴 티켓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리턴 티켓을 필리핀 바욤봉 집에 두고 가져오지 않았고 공항직원에게 말했다. 하지만 공항직원은 리턴 티켓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내는 공항 여직원과 입국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다. 두 아들과 나는 옆에서 구경하는 처지였다. 우리는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공항에 발이 묶였다. 급기야 둘째 아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는지 울기 시작했다. 그냥 흐느껴 우는 게 아니라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어 엉엉 울어댔다.
항공직원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Go back your country"
이 말을 알아들은 둘째 아들은 집(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엉엉 울었던 것이다.(나중에 아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아내는 입국문제를 해결하려고 계속 공항 직원과 이야기를 하였고 나와 아이들은 옆에서 난감한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가 영어를 좀 하고 나는 영어가 안되니까 아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시아나 항공사의 한국 여직원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한국 여직원과 필리핀 공항 직원 그리고 아내 셋이서 대화를 한참 했다.
결국 리턴 티켓을 팩스로 공항 사무실로 보내 주겠다는 조건으로 우리는 입국을 허락받았다. 우리는 리턴 티켓이 없다는 이유로 필리핀 공항에서 3시간 넘게 억류되었다가 풀려났다. 꼭 리턴 티켓이 있어야 입국할 수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어렵게 다시 필리핀 바욤봉 우리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만약 리턴 티켓을 보내지 않으면 블랙리스트에 우리 이름을 올린다고 공항직원이 우리에게 엄포를 놓았기에 바욤봉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팩스로 리턴 티켓을 필리핀 공항 사무실로 보냈다.
필리핀 공항에서 엉엉 울던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지금은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다. 지난주에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집에 내려와 우리와 함께 있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