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우수에 젖다

kddhis 2024. 2. 21. 21:27
728x90
반응형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가는데 동료는 우산을 펼쳐 들고 함께 쓰고 가자고 바짝 내 쪽으로 몸을 붙인다. 비가 내리는지 안 내리는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빗방울이 눈꼽만큼 떨어지고 있었다.

 

   

비 내리는 저녁거리는 축축하고 썰렁했다. 거리는 사람이 없어서 활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사무실 건물과 아파트 단지 사이의 후미진 곳에 있는 먹자골목이라 비가 오지 않은 평상시에도 행인들이 그리 많지 않은데 비까지 내리니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동료가 우산을 함께 쓰자고 우산을 내 머리 위로 옮겼지만 이동 거리가 짧아 동료의 배려를 뒤로하고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17년 전(20072008) 필리핀 유학 시절이 생각이 난다. 필리핀은 일 년 내내 고온 다습한 아열대성 날씨를 보이며 연평균 기온 25~29℃이고 특히 6~10월에 많은 비가 내린다. 3월부터 5월까지는 32℃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여름도 있는 나라다.

 

 

내 머릿속에는 필리핀을 생각나면 비가 떠오르고 비를 보면 가족과 함께 보냈던 필리핀 생활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비를 보면서 나는 왜, 기후환경도 좋지 않은 낯선 이역만리까지 와서 이 개고생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에 기분이 우울해지곤 했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필리핀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던 유학 시절이다. 필리핀에서 아내와 나는 SMU대학교(석사과정), 우리 아이들은 필리핀 사립 초등학교에 다녔다. 우리 모두는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편했지만 우리는 필리핀의 비와 더위에 적응하고 이겨내며 잘 지냈다.

 

 

온 식구가 필리핀에서 2년 정도 지냈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우리 가족의 삶이 한층 풍요로워졌으며 힘들었던 필리핀 생활이 우리 가족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했다고 생각한다.

 

 

2007년과 2008년에 우리 가족의 역사를 남긴 필리핀 생활을 하는 동안 세계가 2008년 금융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당시 큰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에, 작은 아이는 3학년이었다. 돌이켜 보니 아이들이 그때 한참 귀여웠던 어린아이였다.. 그때는 몰랐다.

 

 

 

어린 두 아들은 자신들의 동의 없이 단지 부모의 의지로 필리핀에 온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어지간히 극성맞은 부모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아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것은 아내는 아이들의 영어 공부를 위해 필리핀 유학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17년이 지난 지금, 초등학생이던 큰아들은 벌써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을 다니고 둘째는 올해 대학교를 졸업한다.

 

 

지금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겨울비를 보면서 필리핀에서 비 내리는 풍경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쓸쓸해하던 2008년 내 모습을 소환해 보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