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한순간에 날려 버린 봄 기운
하루 사이에 날씨가 또 바뀌었다. 어제는 겨울처럼 추웠는데 오늘은 미세먼지 한 점 없는 완연한 봄이다.
점심 먹고 동료들과 강변을 거닐었다. 하늘은 흰 구름과 파란 구름을 선명하게 구분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봄을 알리는 새싹과 맑은 하늘을 보며 우리는 기분 좋게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1년 365일에서 오늘처럼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맑은 날은 그리 많지 않다. 봄기운을 받기 딱 좋은 날이다.
강변의 개나리는 이제 막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벚나무는 꽃봉오리를 표출하고 있었다. 앞으로 2주 정도 지나면 만개한 개나리와 벚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변은 봄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노란 개나리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벚꽃 몽우리, 맑은 하늘의 조화는 자연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음 주나 다다음 주에 강변의 개나리와 벚꽃은 이제 막 움튼 새파란 풀 잔디와 함께 생동감 넘치는 봄 향기를 우리에게 선물할 것이다.
화창한 봄 풍경은 루틴 한 도시 생활에 찌든 찌뿌둥한 마음까지 말끔히 씻어주는 에너지이자 생명수처럼 다가왔다.
강변의 경치를 뒤로 하고 서둘러 사무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강변과 사무실 중간 지점의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는데 그곳에도 또 다른 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봄은 아파트 화단 한 귀퉁이에 하얗게 핀 목련꽃이다.
풍성하게 핀 흰 목련은 행인을 유혹하듯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막 피어난 목련화입니다. 열흘이 지나면 나를 못 봅니다. 얼른 와서 저의 아름다운 모습을 봐주세요”
나는 목련꽃에 유혹당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백목련화를 바라보았습니다. 2.5미터정도 되어 보이는 목련 나무에 상하좌우 균형을 잡기라도 하듯이 두루뭉술한 원뿔 모양의 꽃잎이 목련 나무 좌우에 골고루 매달려 있었다.
목련은 진달래, 개나리와 함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목련은 다른 꽃에 비해 빠르게 피고 또 빠르게 지는 꽃이다. 잠깐 피었다가 어느새 지는 꽃이 목련화다.
기분 좋게 산책하고 12시 40분경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조용한 사무실의 분위기를 깨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벨 소리에 놀란 직원이 누구 책상에서 울리는지 확인하고 내 전화라고 알려 주었다.
"이 시각에 나에게 걸려 올 전화가 없는데, 이상하다." 라고 생각하며 책상에 놓인 수화기를 귀에 대며 “여보세요.”라고 했더니, 상대방의 까칠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렸다.
“전화 안 받으려면 뭐 하러 핸드폰 갖고 다녀요”. 잔뜩 열이 오른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내다. 급하게 연락할 게 있어 내 핸드폰으로 전화했는데 받지 않아 사무실 전화로 연락을 한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내의 성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봄 경치도 봄기운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마음의 평안은 따뜻한 봄향기 보다 아내의 말투와 태도가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제아무리 기운을 북돋아 주는 화창한 봄 풍경이라도 정신건강에 아내의 부드러운 목소리보다 못하다. 봄기운은 아내의 성난 목소리에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는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