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같은 며느리
4월의 마지막 날. 4월 30일, 어버님이 계시는 요양원에서 5월 가정의 날을 맞아 야회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 해도 요양원 음악회에 아내와 함께 참석했다.
아내는 야외로 나오신 어머님이 추울까 봐 차에서 담로를 가져와 어머님을 덮어 주고 바삐 어디로 가더만 요양원에서 준비한 떡, 과일 등 먹거리를 가지고 와 어머님에게 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어머님은 딸 없이 아들만 넷을 키우셨다. 불행히도 우리 형제 중에 딸처럼 어머님을 대해주는 형제는 없었다. 자식들 모두 메마른 나무처럼 무뚝뚝했지 서글서글한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어머님은 아들 넷을 키우면서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이런 딱딱한 집안 분위기를 조금 희석시킨 사람은 바로 아내다. 장남인 나와 결혼하여 추석이나 설 명절에 부모님 집에 가면 어머님은 아내를 데리고 읍내에 나가 식재료를 사러 돌아다니는 게 낙이셨다.
딸 같은 든든한 며느리를 데리고 읍내를 다녔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는가. 딸 없는 어머님의 허전함을 아내가 조금 메꾼 것이다.
세월이 흘려 건강하신 어머님은 거동을 못하시고 치매 증세까지 생기셔서 1년 6개월 전에 아내의 제안으로 고향집 근처 대도시 요양병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로 모셔 왔다.
집 근처로 모신 이유는 자주 찾아뵙고 자식으로서 어머님을 가까이에서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자녀가 능력 있어도 부모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 부모님 얼굴 보는 횟수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혹시 어머님이 아프시면 즉시 대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머님을 모셔온 이후부터 자주 뵐 수 있고 어머님이 아프시면 병원으로 모셔갈 수 있어 멀리 있을 때보다 한결 자식으로서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부부는 오늘 가정의 날을 맞아 열린 음악회에 참석하여 어머님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과를 함께 먹었다. 이 자체가 어머님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어머님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는 아내에게 한 없이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며느리의 행동과 태도에 어머님도 만족하셨을 것이다.
팔순이 훌쩍 넘으신 어머님을 집에서 못 모시는 불효자이지만 가까이에서 어머님을 돌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어머님은 저녁을 드시고 6시부터 8 사이에 딸 같은 며느리에게 매일 같이 전화를 거신다.
"퇴근했냐? "
"아직 사무실이에요." 또는 "집에 가는 중입니다." 아내의 답변에 어머님은 "얼른 집에 가서 쉬어라." 또는 "일찍 자라."
이런 대화가 매일같이 반복된다.
어머님은 가족이 그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