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
어제 못다 한 대추밭 예초 작업을 마치고 8시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아침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리나께 샤워하고 식탁에 앉았다, 배가 무지 고파서.
식탁에서는 호박, 양파, 고추 등을 넣고 끓인 된장국, 당면과 양파가 들어간 소고기 주물럭, 참치 액젓을 넣은 계란찜, 압력밥솥으로 지금 막 지은 찰진 밥,, 어제 수확한 참외 등이 놓여 있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밭일하고 먹는 아침은 꿀맛 있었다.
잠꾸러기인 아내가 휴일인데도 평일처럼 일찍 일어나 아침밥상을 차린 이유는? 남편이 휴일 새벽에 혼자 밭에서 예초작업을 하느라고 고생했다는 사랑의 표현일 것이다.
점심때에는 아침 메뉴에 '오리 로스'가 식탁에 올라왔고, 저녁에는 '치킨'이 추가되었다.. 일요일 아침, 점심, 저녁 등 세끼를 아내가 요리한 특별음식을 배부르게 맛나게 먹었다.
이것뿐만 아니다. 시원한 에어컨이 돌아가는 집에서 매 끼니 사이사이 포도, 참외, 복숭아, 초콜릿과자 등 간식을 먹고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책 읽으며 즐겁고 평안한 일요일을 보냈다. 이보다 더 좋은 휴일은 없는 듯했다.
그런데, 저녁 후식으로 복숭아까지 맛나게 먹고, "우리 가족, 행복한 가족"이라 생각하며 기분 좋게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유리잔 깨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지저분하게 할 겁니까. 머리 감고 바닥에 물을 뿌리면 되는데, 그것도 하지 않고, " 얼굴에 오만 인상을 쓴 아내의 목소리가 내 몸을 강타했다.
화난 아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아무 대꾸 못하고 그냥 듣기만 했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잘못이니까.
휴일을 포근하게 보내다가 갑자기 해 떨어진 저녁에 시베리아처럼 집안 분위기가 싸하게 변해 벼렸다. 온탕에서 예고도 없이 냉탕으로 들어온 기분, 이 어찌 우울하지 않겠는가.
소파에 책을 읽고 있던 나는 한 동안 멍하니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글씨가 보이지 않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내 얼굴만 머릿속에서 뱅뱅 맴돌고 있었다.
이 살벌해져 버린 집안 분위기를, 어찌 하오리오. 어찌 하오이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로 나는 소파에서 꼼짝 않고 그대로 앉아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들고 있었다.
그래도 악몽 같은 찰나의 시간은 흘려갔다. 아내는 마음이 불렸는지, 아니면 자신이 언성을 지나치게 높였다고 생각했는지, 아내는 나에게 산책하자고 말을 걸어왔다.
가로등이 켜진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를 따라 함께 걸었다. 아내는 화가 불린 것이다. 아내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화장실을 지저분하게 만든 남편이 미워서 화를 냈지만, 어쩔 건가 함께 살아야 한 남자인 걸, "
이제 와서 이 정도의 일로 결혼을 물리 수도 없지 않은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는 수밖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
오늘을 돌아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부란 서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이다, 행복이나 불행을 포함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