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행복을 결정한다
수년 전에,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장인, 장모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자녀, 사위, 며느리, 손자녀 등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고집 센 장모가 험악한 악담으로 장인을 인정사정없이 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려, 지난주에 지인을 다시 만났는데, 장인은 거동을 못하는 장모를 돌보지 않고 집에 방치한 채 외출한다는 것이다.
요양보호사가 하루 4시간씩 장모를 돌보는데, 요양보호사가 없는 시간대에 걷지 못하는 장모는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밥 챙겨 먹고 화장실 가는 등 집에서 스스로 생활한다는 것이다.
한 번은 장모가 의식을 잃어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는데,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장인은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아 자녀들이 의아해했다고 한다.
장인은 병든 장모가 죽든 살든 나 몰라라 하며 지낸다고 한다. 장인은 자신에게 막대한 장모에게 복수하는 것일까.
지금은 자녀들이 순 번을 정해 팔순이 넘은 장모를 돌본다고 한다.
결혼을 왜 했을까?
동물적 본능, 즉 종족번식 본능으로 암수 동물처럼 남녀가 만나 육체적 사랑을 하는 것일까. 순고한 사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상태에서 남녀가 자신의 짝을 만나 결혼하여 자식 낳고 살는 것일까.
만약 이렇게 부부가 '달 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정머리 없는 양아치처럼 평생을 함께 산다고 생각해 봅시다. 인간으로서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찌 부부라 하겠는가, 어찌 인간이라 하겠는가. 동물이지, 슬프다.
아무리 부자이고 능력 있고 권력이 있어도 부부관계가 시원찮으며 행복하게 살 수 없다.
반면 가정살림이 어려워도 부부 사이에 순수한 사랑이 있으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잘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듯 가정 화목의 정도가 행복의 질과 양을 결정한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지상 과제며 삶의 궁극적 목적이다. 우리가 이렇게 갈구하는 근본적인 행복은 화목한 가정에서만이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