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개뿔이다
친구 중에 말수가 적은 과묵한 고향 친구가 있다. 50년 지기 죽마고우다. 너무 과묵해서 땅이 꺼질 지경이다. 그와 단둘이 있으면 내가 말하고 그는 듣는 편이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침묵이 흐르는데, 이럴 땐 그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부담이고 갑갑하다.
침묵의 어두운 분위기가 싫어 이야깃거리를 찾아 대화를 유도해 간다. 그러면 본의 아니게 내가 떠버리가 되고 만다.
인간은 의사소통 능력으로 무리를 지어 자신보다 힘센 야생동물을 물리치고 지상의 최상 포식자가 되었다.
만약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이해하고 공감하며 생각을 공유하는 전략 전술 능력이 없었다면, 아마 호모사피엔스보다 강한 네안데르탈인에게 살해당해 지금처럼 인류의 번영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인간은 의사소통 도구로 말과 글을 사용해 왔다. 또한 자기표현을 잘하기 위해서는 연습이나 훈련이 필요하다. 즉 말을 해보고 글을 써봐야 표현력을 높일 수 있다.
발표, 연설, 글쓰기 등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자기표현을 더 잘할 수 있다. 그래서 교사, 교수, 변호사 들이 말을 잘하는 이유는 그들의 직업 때문이다.
자주 말해 보고 발표하고 글을 써 봐야 자신을 표현하는 실력이 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냥 침묵한다. 과묵이 그의 타고난 천성인 듯하다.
그럴지라도 표현력은 개선되고 향상될 수 있는 인간 특성인데도, 그냥 입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를 볼 때마다 답답해 짜증이 날 때도 더러 있다.
만약 과묵한 그가 아는 게 많고 자신감 넘치며 할 말이 많은데도 침묵했다면 용기가 없거나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언변 능력은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게 유익함을 주기 때문이다.
갓난아이만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게 아니다. 성인도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말을 해봐야 한다.
방송 아나운서가 또박또박 조리 있게 말 잘하는 이유는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발음을 연습하고 방송 출연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처음부터 말 잘하는 사람은 없다.
말 없는 과묵한 사람은 사교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교장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수 있다.
누가 입 꾹 다물고 대화를 거부한 듯한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겠는가. 거부감이 느껴질 것인데 말이다. 세상천지에 누가 재미없는 사람과 사귀고 싶겠는가.
자기 표현력도 습관이다. 하다 보면 늘고 잘하게 된다.
과묵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자신감 결여다. 자신감이 없으니 그냥 침묵하는 것이다. 당당한 사람은 자신이 필요할 때 망설임 없이 낯선 사람에게도 다가가 말을 붙여 볼 수 있다.
이렇게 못하는 원인 중 하나는 두려워서다. 그래서 타인에게 다가서지 못한다. 그러니 말을 어떻게 붙이겠는가.
거리낌 없이 자신감 있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말을 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냥 순수하게 다가가 물어보고 이야기 걸어보고 대화를 시도해 본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거절당하거나 무시당한다.’ 하여도 개의치 않는다. 자긍심이 있으니,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다. 스펀지처럼 상대방의 무례함조차도 이해하고 흡수해 버린다. 이 얼마는 멋있는가. 대단한 능력이다.
하지만 자긍심이 없으며 ‘거절이나 무시를 당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어 먼저 말을 거는 것을 꺼릴 것이다. 혹시,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말수가 적은 사람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지식정보 부족이다.
다방면에 아는 게 많을수록 대화 참여 기회가 많아진다. 모르면 자기주장이나 의견, 질의응답에 대해 적절하게 할 말을 찾지 못하게 된다.
박식해지는데 독서가 최고다. 독서로 습득한 지식과 정보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AI가 인간을 따라 할 수 없는 능력 중 하나가 공감 능력이라고 한다. 공감 능력의 바탕은 의사소통 능력이다.
의사소통의 도구는 말과 글이다. 즉 풍부한 어휘력으로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게 되면 소통 능력이 좋아져 공감 능력은 자연스레 높아진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이 문장의 본질은 불필요한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이지 입을 닫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절대로 금이 아니다. 자주 말을 해보지 않으면 말이 투박해질 수 있다. 다시말해 자연스럽고도 부드러운 언변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말하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다.
자기 표현력을 높이기 위해서 독서와 글쓰기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에게 말을 걸어 보자. 웃으면 응답해 줄 것이다.
능숙해지려면, 연습은 기본이다. 부단한 연습 없이 뛰어난 운동선수가 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에 이 친구를 만나는데, 그동안 말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아니면 줄었는지 확인해 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