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남편 사랑
아버님은 내가 어려서 허리를 다치셨다. 국민학교 입학 전에 일어난 일이라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님이 이 사실을 알려주셔서 알았다.
당시 20대였던 어머님은 아픈 남편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는가. 유순한 어머님 성격에 안 봤어도 비디오다.
어머님은 동네 어른으로부터 개고기가 다친 허리에 좋다는 말을 듣고 아버님을 위해 개고기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문제는 어머님에게 돈이 없어 개고기를 살 수가 없었다. 1960년대는 보릿고개를 갓 지난 시절이라 가난한 시골에 무슨 돈이 있겠는가. 어머님에게 땡전 한 푼 없었을 것이다.
설사 집에 현금이 있었더라도 할아버지가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기에 할아버지가 며느리인 어머님에게 현금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다.
어머님은 친 정 아버님의 제삿날이며 부산에 사시는 부자 오빠 집에 다녀왔다. 당시 어머님의 오빠는 방직 사업을 하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았다.
시간이 지나, 내가 국민학교 다녔던 1970년대, 가끔 외삼촌이 우리 집에 왔었는데, 검정 승용차를 몰고 왔었다. 다시 말해 못살던 그 시절에 승용차가 있다는 것은 엄청 부자라는 말이다.
어머님이 오빠 집에 가는 날이면, 어머님의 올케(우리에게 외숙모)가 우리들의 옷을 잔뜩 사주었다고 한다.
개고기가 허리 다친 사람에게 좋다는 말을 들은 어머님은 어느 해 부산 오빠 집에 갔을 때, 어머님은 오빠에게 아이들 옷 사주는 대신에 돈으로 달라고 염치없는 부탁을 했고 그래서 어머님은 5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부산에서 돌아온 어머님은 고향집에서 16킬로미터나 떨어진 읍내 가축시장에서 통통한 노란 누렁이 개를 30만 원 주고 사서 개줄을 잡고 고향집까지 개를 데리고 걸어서 왔다고 한다.
물론 집에서 가축시장에 갈 때도 새벽에 걸어갔을 것이다. 우리 어머님, 참 험악한 시절에 살았다. (지금은 승용차로 2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다.)
네이버 지도로 계산해 보면 고향집에서 읍내 시장까지 도보로 4시간 정도 걸리지만, 1960-1970년 당시에는 지금처럼 도로가 잘 나 있지 않아 철도길 따라 걸어왔다고 한다. 아마 6시간 이상을 누렁이를 데리고 걸어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 봐도 비디오다. 그래도 어머님은 행복했을 것이다. 허리 아픈 남편에게 개고기를 먹이면 아픈 허리가 좋아진다는데 ‘이 정도의 고생은 별것 아니다. “라고 어머님은 생각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어머님은 개 잡아주는 사람에게 개를 맡겨 도축하여 가져온 개고기와 한약방에서 사 온 한약재를 가마솥에 넣고 아궁이에 불을 집혀 익힌 개고기와 국물을 식사 때마다 아버님께 드렸다고 한다.
지금은 거동을 못 하시고 치매까지 있으신 85살이 되신 어머님, 4년 전 하늘나라로 홀연히 떠나버린 아버님이셨지만, 어머님에게도 청춘이 있었고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던 그때가 좋았을 것이다.
세월 지나 늙으면 사랑을 주고받던 그 옛날 젊은 시절이 불현듯 떠 오른가 봅니다. 오늘 추석 명절에 어머님을 만났을 때, 어머님이 처음으로 위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늙으면 소용없다. 나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주변 사람에게 사랑을 주자. 그래야 팔순이 넘어 죽음이 임박할 무렵에 즐거웠던 이야기를 회상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다.
인생은 지구별 여행이라고 한다. 이 지구에 와서 즐겁고 보낸 다음 때가 되면 다시 떠나야 할 지구여행 말이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떠났다. 다음은 누구 차례. 예외는 없다. 우리 모두 언제가 떠난다. 그러니 지구에 있을 때 즐겁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