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하얀 교복 입은 아들 모습

kddhis 2024. 9. 2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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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이 예비군 아저씨가 되었다. 아들은 내 차를 빌려 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예비군 훈련장으로 아침 일찍 떠났다.

 

 

20년 전쯤, 가족과 떨어지기 무서워 울며불며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눈물 콧물 흘리던 아들이 어느새 초중고를 거쳐 군대 제대하고 대학까지 졸업한 예비군 아저씨가 되었다.

 

 

19974월이나 5월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영어 공부를 위해 직장에 유학 휴직을 내고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첫째는 초등학교 6학년, 둘째는 3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필리핀 SMU 대학원에, 아이들은 필리핀 사립학교에 다녔다. 큰아들은 Methodist 스쿨에, 둘째는 Kumon 스쿨에 다녔다. Kumon 스쿨에는 6학년 반이 없어서 각기 다른 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학교 다닌 지 2달도 안돼, 둘째를 형이 다니던 Methodist 스쿨로 전학시켰다. 학교를 옮긴 이유는 모른다. 둘째 아들의 전학은 전적으로 아내가 알아서 처리한 일이라 할 수 없지만, 아마 아내와 Kumon 스쿨 교장선생님 간에 의견충돌이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 공부만으로 영어 공부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과외선생님을 찾고 있었다.

 

 

운이 좋게 그때쯤. Kumon 스쿨을 그만둔 그레이스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Kumon 스쿨의 어느 여선생님이 그레이스 퇴직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그레이스 선생님은 UP(필리핀 대학교) 출신의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유능한 선생님임을 알 수 있었다.

 

 

방과 후에 나는 두 아들을 그레이스 선생님 집에 바래다주고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이 어린 둘째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해 그레이스와 수업하면서 손가락을 떠는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

 

 

그래서 둘째의 불안한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나는 한동안 아들이 그레이스와 수업하는 동안 아들 옆에서 함께 있었다.

 

 

그로부터 몇일지 지나, 둘째가 아빠가 없어도 괜찮다.”라고 해서 그 뒤 아들 혼자 수업을 받았다. 그런 둘째가 벌써 군대 제대하고 턱수염 난 예비군 아저씨가 되었다. 세월 빠르다.

 

 

필리핀에서 한 학기를 보낸 우리는 1997년 겨울방학을 맞아 12월에 한국으로 잠깐 돌아와 10일 정도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다음 필리핀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필리핀 공항에서 한국행 return ticket이 없다는 이유로 필리핀 입국을 저지받아 필리핀 출입국 직원과 실랑이를 장시간 벌였다. 아마 3시간 이상 입국 못하고 공항에 머물렀다. return ticket을 필리핀 집에 놓고 온 것이다.

 

 

필리핀 출입국 여직원이 우리를 보고 당신 나라 한국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들은 둘째 아들은 겁에 질려 공항이 떠나갈 정도로 엉엉 울어 댔다.

 

 

필리핀 공항에서 노란 피카추 가방을 메고 눈물을 흘리면 소리 높여 울던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둘째가 아버지 차를 몰고 훈련장에 가는 예비군 아저씨가 되었다.

 

 

지방 교육도시인 Bayombong Nueva Vizcaya에서 8월간 거주한 우리는 마닐라도 이사했다. 마닐라로 옮긴 이유는 지방의 교육 및 생활환경보다 필리핀 수도인 마닐라가 더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되도록 한국 사람이 없는 필리핀 지방 교육도시를 선택했다. 그런데 필리핀 지방에서 영어를 배우기에 불리한 점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영어를 가르치지만, 지방 사람들이 그 지방 언어를 쓰는 바람에 영어, 필리핀어, 지방방어 등 3가지 언어에 아이들이 노출되었다.

 

 

하얀 교복을 입고 현관 입구에서 형에게 스쿨버스 놓친다고 빨리 학교 가자고 재촉하던 귀여운 초딩이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벌써 둘째가 예비군이라니 꿈꾸는듯하다.

 

 

이처럼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30년 전, 19941225일 결혼하고 둘째 아들이 예비군이 된 지금까지의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두 아들이 어느새 아빠 이상으로 커버렸으니 이런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두 아들이 결혼하고 귀여운 손자녀를 보듬어 주고 가끔 가족여행 함께 하다 보면 나도 우리 아버지처럼 이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그날이 올 것이다.

 

 

어쩔 건가. 가버린 시간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젊은 시절을, 달리 방법 없다. 사는 그날까지 즐겁고 재밌게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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