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승전보를 기다리며
어제저녁(시간은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에 사전 연락도 없이 아내가 내 사무실로 왔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오라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면서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아마 아내에게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 아내가 친히 나를 모시려 올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기가 직장에서 열리는 탁구대회 부서 대표선수로 선발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 주었다. 아내가 나를 데리러 온 이유는 나를 파트너 삼아 탁구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집에 오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 한가운데에 있는 탁구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가능한 몇 분이라도 더 탁구 연습을 하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시각이 저녁 8시 30분 언저리였을 것이다.
헬스장 맞은편 구석에 낡은 탁구대가 달랑 놓여 있었다. 탁구대를 보고 좀 실망했다. 누군가 버린 듯한 구닥다리 탁구대로 보였다. 탁구대 네 모서리가 벗겨져 흠집이 나 있었다.
볼품없는 탁구대였는지 아무도 이용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탁구대를 사용하고 있었다면 우리 부부가 탁구대를 이용할 수 없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탁구장 옆 당구장에서는 50대 남성 다섯 명이 당구를 치고 있었다. 탁구대에 비해 당구대는 광이 나는 듯했다. 즉 먼지 쌓인 탁구대는 집안에서 포기한 못난 자식처럼 보였고 당구대는 귀한 대접받는 얼굴이 번지르르한 왕자님 같았다.
당구장은 탁구대 안쪽에 놓여 있어서 당구 치는 사람들이 수시로 탁구장을 지나 당구장으로 들락거렸다.
그래서 당구 치는 사람들이 탁구대 뒤쪽으로 오갈 때면 탁구 치는데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최대한 탁구공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고등학교 이후 처음 치는 탁구다. 탁구공이 탁구채를 잘도 피해 다녔다. 헛손질할 때마다 맥이 빠졌다.
그래도 그렇지, 오랜만에 탁구 한다고 이렇게 감이 떨어진단 말인가. “나이 때문일까. 운동신경이 둔해진 것일까.” 탁구에 대한 자신감이 밑바닥을 헤어나지 못했다.
네트를 가운데 두고 랠리가 2번 이상 연속되지 못하고 탁구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파리채로 파리를 잡는 격으로 탁구 라켓을 10여 분간 정신없이 휘둘러 댔다.
누가 볼까 창피할 정도로 탁구 실력이 형편없었다. 시작한 지 30여 분이 지나가자. 탁구 치는 실력이 점점 나아졌다. 100%로는 아니지만 고등학교 탁구 치는 감각이 조금은 되살 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내는 빨간 탁구채로 파리를 잡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아내가 공을 받아칠 수 있도록 탁구공을 넘겨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연달아 헛손질을 멈추지 못했다.
그로부터 1시간가량 지났을까. 아내도 탁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랠리가 4. 5번 정도 오고 갔다. 처음보다 한결 탁구를 잘 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도 탁구 대회 나가기에 아내의 탁구 실력은 부족하게 보였다. 정확하게 진단하자면 이 수준의 탁구실력으로는 탁구시합에 나간다는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저녁 11시가 가까워졌다. 이제 그만 탁구를 치고 집에 갈 시간이 됐는데도 아내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땀을 닦아가며 열심히 바닥에 떨어진 탁구공을 줍고 서브를 넣고 받아치기를 반복했다.
무리하면 내일 경기에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내일 경기를 위해서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고 싶어도 탁구에 몰입한 아내 때문에 그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당구 치는 사람들이 당구대가 있는 쪽 전등을 끄고 떠난 바람에 탁구장까지 어두워졌다. 또 그로부터 20. 30분이 지나자. 지친 아내가 그만하자고 말해서 탁구 연습을 끝냈다. 연습 시간이 더 남아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왔다.
오늘 연습으로 아내의 탁구 실력이 향상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아내를 보면서 내일 탁구 시합에서 선전하길 바랄 뿐이다.
혹시 아는가. 운 좋게 경기에서 아내가 승리할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오늘 연습을 도와준 내 덕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내일 아내 직장에서 개최되는 탁구 시합이 기대된다. 아내의 승전보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