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내가 자랐던 시골 집

kddhis 2024. 11. 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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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곳은 산 아래 농촌 마을이었다. 마을 앞 논과 논 사이에  읍내로 가는 신장로(비포장 큰길)가 길게 나있었고 그 너머에는 철도가  철도 너머에는 시냇가가 있던 바로 그곳이 유년시절에 살았던 내 고향이다. (지금도 신장로와 시냇가는 여전히 있지만 국도와 고속철도가 건설되어 주변환경이 예전과 다르다.)

 

 

이처럼 마을 앞은 뻥 뚫려 있지만 나머지 마을 삼면은 산으로 삥 뚫려 쌓여 있어 비바람을 막아주는 위치에 마을이 있어서 자연재해가 없는 안전한 동네다.  `

 

 

봄에는 분홍빛 진달래 꽃잎을 따먹고 여름이면 시냇가에서 물장구치고 송사리, 붕어 등 민물고기를 잡았고 들판에서는 개구리나 뱀을 찾아 다녔으며 가을이면 온 산을 돌아다니며 밤 줍고 칡뿌리를 캐 먹으며 뛰어다녔으며 눈 내리는 겨울에는 뒷동산에 올라가 눈썰매를 타고 친구들과 눈싸움하며 장난치고 놀았던 그곳이 우리들의 놀이터이었다.  

 

 

60년대나 70년대 그 옛날 그 시절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농촌 출신들은 대체로 나와 같은 시골 환경에서 살았을 것이다. 먹을 게 궁했고 가진 게 없었으며 놀이터나 공부방, 도서관 등 체육 교육 문화시설이 없었지만 산과 들, 시냇가가 우리의 놀이동산이었고 학습장소이며 공부방이었고 체육시설이었다. 

 

 

나는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시골에서 살았다. 그 후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향을 떠난 이후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시골집을 가끔 갔지만 고향에서 머물며 살지는 않았다. 중학교 졸업 후 쭉 타향에서 지냈다.

 

 

5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 마저 아프시고 거동을 못하셔서 요양원에 있는 바람에 지금 고향집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병석에 계신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아마 고향집을 처분해야 할 것 같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을 그냥 둘 수는 없기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시골집이 남의 소유가 되면 고향집은 마음속에만 남게 될 것이다.

 

 

어린 추억과 함께 아버님 어머님이 평생 사셨던 고향이지만, 부모님이 힘든 농사일을 하시며 어렵게 사는 고통스러운 모습이 눈에 선해서 솔직히 고향을 떠올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기분이 우울해지니까. 그렇게 고향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가슴에 남아있어서 시골집이 마음에 끌리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고향에 정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자랐던 시골집이고 아버님과 어머님이 평생 사셨던 고향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련한 어린 시절이나 아버님 어머님이 생각날 때면 우사(소를 기르는 집)가  있었던 고향집이 생각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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