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박힌 일상의 마침표
나는 새벽 5시쯤 일어난다. 눈을 뜨면 침대에서 내려와 조심조심 거실로 나와 거실 등은 켠다. 그리고 충전기에 연결되어 있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반쯤 감긴 꺼벙한 눈으로 카톡과 주식시장을 본다.
잠에서 깨자마자 제일 먼저 스마트폰을 보는 이유는 밤사이에 어떤 문자가 왔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궁금한 것은 사실 따로 있다. 바로 주가다. 내가 보유한 미국 주가가 상승했으면 기분 좋고 그 반대이면 씁쓸하다. 그런 느낌도 잠깐이다. 이내 잊어버린다. 나는 장기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식 창이 빨간색이냐 파란색이냐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는 것을 보면 나 역시 당장 눈앞은 현상(이익)에 매몰되는 초식동물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장기투자만이 개인투자자가 돈을 벌 수 있는데 말이다. 물론 단타로 수익을 내는 초고수 투자자도 있겠지만, 극히 소수일 것이다.
핸드폰을 보면서 주방으로 가서 정수기를 통해 따뜻한 물 한 잔을 내려 마신다. 찬물보다 온수를 선택한 이유는 내 위장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목구멍으로 물을 넘기면서 잠이 덜 깬 몸을 이끌고 샤워실로 들어간다. 먼저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고 샤워부스로 들어가 발을 씻고 온수로 온몸을 따뜻하게 적신 후에 비누칠하고 머리 감고 물로 씻어 낸다. 그리고 수건으로 빠르게 몸을 닦고 머리를 말 린다.
샤워실에서 나오기 전에 꼭 할 일이 있다. 샤워실 바닥과 벽을 물로 씻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아내가 나에게 신신당부하는 일이다. 아내가 지저분하게 샤워실을 사용한 나에게 몇 번 경고했기에 요즘 샤워를 끝내고 물을 뿌리고 나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내가 샤워실 청소를 하기에 나는 아내의 경고나 잔소리에 한마디 말도 못 한다. 만약 샤워실 뒷정리를 잊어버리는 날에는 아내의 따가운 눈총과 험악한 소리를 들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아내와 아들은 거실 공용 화장실 內 샤워실을 사용하고 큰방 샤워실은 나 혼자 쓴다. 그래서 큰방 샤워실이 지저분해지면 내 잘못이기 때문에 그 어떤 핑계나 발뺌도 할 수가 없다.
나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샤워를 한다. 그러면 찌뿌둥한 몸이 한결 좋아진다. 그래서 보통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샤워한다. 이 때문에 아파트 관리비에서 온수 비용이 많이 나온다. 그렇지만 그 비용이 아깝지 않다. 건강을 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샤워 후 개운해진 맑은 정신으로 식탁에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책을 본다. 독서 후 아침 밥상을 차리고 밥 먹는 사이에 아내가 잠에서 깨어난다. 그 시각이 대략 6시 30분 정도 된다.
내가 밥을 먹고 양치질하고 면도하고 자작나무 로션 바르고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사이에 아내는 샤워를 끝마치고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꼬불꼬불 말고 얼굴 치장을 한다. 아내가 머리하고 얼굴 화장하는 시간은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나는 아내가 얼굴 화장하는 동안에 집을 나선다. 아내는 나보다 20여 분 늦게 출근한다.
간혹 비가 오는 날이면 아내 사무실까지 태워다 줄 때가 더러 있다. 그러나 요즘 아내는 차를 타고 가는 대신에 운동하는 샘 치고 걸어 다닌다. 오늘도 함께 차다고 가자고 말했지만, 아내는 한사코 거절하며 걸어서 출근했다.
직장을 다니는 우리 부부는 아침에 각자 출근 준비 하기에 바쁘다. 서로 출근 준비를 도와줄 겨를이 없다. 출근해서 각자 직장에서 하루일과를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주중에 우리 부부는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야 1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바쁘고 여유 없이 살아가고 있다. 퇴직하면 이런 생활패턴이 달라질 것이다. 그때는 시간적 여유와 마음의 여유를 동시에 마음껏 누릴 작정이다. 기대된다.
33년간 직장인으로 집과 직장을 정시에 오가는 "나인 투 식스" 생활에서 졸업하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물론 6시 정각에 퇴근하지 못하고 야근을 밥 먹듯 했다. “나인 투 식스” 라기보다는 “나인 투 나인‘의 직장생활이었다.
아내에게 “나 퇴직 얼마 남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면 아내는 나를 부러워한다. 아내와 나이 차이가 있어서 내가 먼저 3년 일찍 퇴직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은 것이 좋을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에 박힌 직장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퇴직하고 이런 직장생활이 그리워질까?.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직장에 목메어 사는 게 뭐가 좋다고 그것도 33년 했으면 그것으로도 차고 넘친다. 미련 없다. 누구나처럼 나도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일상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 저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빨리 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