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건강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

kddhis 2024. 12. 16.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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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금요일, 점심에는 얼큰하고 걸쭉한 수육 국밥을 먹었고 저녁에는 짭짤하고 달달한 제육 덮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이런 거친 음식을 점심과 저녁에 연달아 먹는 바람에 속이 불편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결국 다음 날 토요일 아침에 배탈이 나 버렸다. 배탈 설사로 화장실에서 속을 다 비워서 게운 했지만, 맥이 빠져 도저히 움직이기 힘들어서 잠에서 깨진 1시간도 채 못되어서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한숨 자고 일어나 여전히 피곤한 몸으로 오전 11시경에 어머님 병문안을 갔다. 어머님은 병상에 누워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으시고 있었다. 지난주나 지금이나 어머님의 건강 상태는 달라진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어머님은 항상 눈을 감고 계시고 깨우면 그때 서야 눈을 뜨고 사람을 보신다고 간병인이 말해 주어서 나는 어머님을 흔들어 깨워보았지만 좀처럼 눈을 뜨고 나를 보려고 하지 않으셨다. 어머님은 몸을 가눌 힘조차 없으셔서 눈조차 뜨기가 어려운 것이다. 어머님을 여러 번 불러 보고 깨워보았지만, 눈을 제대로 뜨지 않으셔서 나는 제풀에 지쳐 포기하고 속상해서 병실을 나와 버렸다.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배탈 설사로 속도 불편했고 어머님 걱정 때문에 소금에 순이 죽은 배추처럼 착 깔아 앉은 울적한 기분으로 주말을 보냈다.

 

 

어머님이 아프신 지 벌써 6년이 넘었다. 어머님은 종합병원, 정형외관, 노인전문병원, 한방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치료를 받으셨지만, 원인 모를 이유로 어머님의 병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팔순의 나이 때문인지 회복은 고사하고 병색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어머님은 거동을 못 하시고 치매 증상까지 있어서 어머님 자신도 힘이 드시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 역시 고통스럽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딱 우리 가족을 두고 한 말처럼 들린다.

 

 

아무리 첨단 의료 기술이 발달되었다고 해도 노화와 그에 따른 질병을 막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어머님이 계신 병원에 어머님 같은 나이 든 할머니들이 많이 병동에 입원해 계신다. 이처럼 늙고 병들어서 병원에 계신 할머니들을 보니 어머님만 아픈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이 조금은 되었다.

 

 

어머님 때문에 아픈 마음을 끌어안고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 내내 우리 인간은 왜 사는 걸까?”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머님은 팔십 평생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결과가 지금 병상에 꼼짝도 못 하시고 말도 못 하시고 눈도 뜰 기운도 없는 어머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인생무상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내면의 일기>로 유명한 스위스 작가 ‘HF 아미엘의 다음 말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나와 어머님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듯하다.

 

 

건강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 건강은 모든 자유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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