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비의 폐해, 과소비는 자유를 빼앗아 가는 괴물이다.
냉장고에서 섞어가는 음식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물건들이 넘쳐나 주체도 못 하는 과소비 시대에 살고 있다. 물건에 포위되어 허우적대고 있다고나 할까. 주변을 둘려 보시라.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지, 대부분 쓰지 않고 방치된 물건들이 눈에 쉽게 띌 것이다.
신발장에는 신지 않은 신발들로 가득 차 있고, 옷장에는 입지 않은 옷이 입고 다니는 옷보다 더 많이 걸려 있으며, 각종 서랍장에는 쓰지 않는 온갖 잡동사이가 들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장기간 쓰지 않은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는 이사 온 뒤로 한 번도 들어가질 않았을 것이다.
어디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갑자기 어떤 물건이 필요해서 찾다가 찾지 못하고 다시 사는 경험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닌다. 약상자에는 복용하다 남은 여러 약들과 함께 반창고, 피부연고 등 상비 약품들이 어지럽게 제멋대로 쳐 박혀 있다.
특히, 잘 먹고 잘 사는 이 시대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남긴 음식을 버러는 행위인데,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배고픈 시절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음식의 소중함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먹고 남은 음식은 버리지 않고 보관해서 다음에 먹곤 한다. 나는 우리 할머니가 상해 가는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자란 손자답게 음식을 중히 여기셨던 할머니 아버지 같은 사람이다. 할머니는 손자들에게 먹는 것을 버리면 천벌 받는다고 오는 복도 달아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이처럼 쓰지 않고 방치된 물건들과 더불어, 냉장고에서 섞어가는 식재료, 재활용품으로 내놓는 의류 운동화, 돈 냈고 스티커 붙여 버린 책상 의자, 가구 등 대형폐기물을 볼 때마다 요즘 사람들은 물건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잔소리하지 않는다. 말을 해보았자 이해 못 할 께 뻔하니까.
어제 퇴근하면서 현관 앞에 배달된 택배물건을 들고 왔는데, 오늘 아침에 배달된 또 다른 상자를 아내가 가지고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버튼 몇 번만 눌으면 주문한 상품이 하루 안에 집 앞까지 배달되는 편리한 세상이다. 그러나 인터넷 쇼핑이 소비자를 매혹시켜 과소비를 조장하고 있다.
나 어릴 때, 그러니까 60년 70년 시절에, 물건을 사려면 오일장(五日場)에 가야 했다. 즉 5일을 기다려야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가 있었다. 오일장이란 닷새(5일)마다 서는 시장을 일컫는데, 상설 시장이 들어서기 전에 형성된 상거래 장소였다.
그 당시에는 생선 장수도 바구니 상인도 머리나 등에 상품을 이고 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기에 소비자가 특정 물건을 사려면 떠돌이 상인이 동네에 오는 날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지금은 어떤가, 택배가 하루라도 늦으면 구입처에 항의 전화하고 불만을 떠는 게 유별나지 않은 세상이다.
지금은 1년 356일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아이스케키는 여름에 만 먹을 수 있는 별식이었다. 케키 장사가 케키통을 어깨에 메고 오거나 자전거에 싣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이스케키를 팔았다. 오직 케이 장수가 오는 특정한 여름날에 고무신을 주고 케키를 사 먹을 수 있었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계절에 관계없이 일 년 내내 사과, 배, 감, 밤, 바나나, 키위 등 온갖 종류의 세계 과일을 먹을 수 있다. 겨울에 딸기는 먹는다는 것은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때보다 상품이 넘쳐나는 지금이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고 양궁처럼 세계에서 1위를 놓치지 않는 종목(?) 중에 하나가 바로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라고 한다. 이 통계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예전보다 지금이 더 상대적으로 빈곤해졌다는 것은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때는 돈이 없고 정말 먹을 것이 부족해서 힘들어했고 지금은 먹을게 풍부한데 상대적 빈곤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때는 생필품 살 돈이 없었지만 지금은 과소비로 돈이 부족한 것이다.
불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시대에 소비를 줄이고 검소하게 살면 누구보다 빨리 돈을 모아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데 그게 생각보다 어려운가 보다.
소비를 조장하는 인터넷 쇼핑의 등장으로 소비자들이 물건의 포로가 된 것 같다. 과소비의 원인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안 사면 못 베기는 소비자의 출현과 냉장고에서 섞어가는 한이 있더라고 꽉꽉 음식을 채워 넣어야 안심되고 직성이 풀린다는 소비심리도 작용한 것 같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과소비를 하면서 돈걱정 하며 평생을 살든가, 아니면 검소한 생활로 풍요를 누릴 것인가, 과소비와 풍요는 상반되기에 함께 동행할 수가 없는 게 문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역시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라고 생각해 줬으면 참 고맙겠다.
소박하고 살면서 돈걱정 없이 자유롭게 사는 게 최고로 행복하게 잘 사는 방법이다. 반면 과소비하고 돈걱정하며 불안하게 사는 것은 자유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누구나 당연히 자유를 선택할 것인데, 과소비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능력도 안 되는 얼간이가 분수에 맞지 않게 할부로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는 게 그 사례다. 인간의 헛된 욕망이 자유를 포기하게 한다. 과소비는 자유를 강탈해 가는 범인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