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봄을 애타게 기다리며

kddhis 2025. 3. 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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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창으로 보이는 겨울 풍경은 어제와 똑같습니다. 이제 3월인데도 아직 자연에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매일 같은 겨울 풍경에는 더 이상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변화가 있어야 눈이 반짝반짝 반응을 하는데, 시각이 시큰둥하는 눈치입니다. 
 
 
언제쯤 초록으로 물든 싱싱한 자연 풍경을 볼 수 있을 까요. 겨울이 길게 느껴진 것은 막바지 겨울이라서 그러간 봅니다.
 
 
3월 1일인데, "겨울 풍경, 겨울 날씨"라는 말을 쓰는 게 좀 어설퍼 보이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나무 마디처럼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습니다. 회색지대가 훨씬 넓고 넓은데, 인간은 구분하기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진보 보수, 좌익 우익, 너 편 내편처럼 자꾸자꾸 확실히 구분하려 들지요.
 
 
이 세상에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계절입니다. 진작 가을이 왔는데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하고, 개나리가 핀 봄인데 눈이 오기도 하며, 아직 계절은 봄인데 더위가 벌써 찾아오는 게 다반사인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날씨의 변화는 무상한데, 특정시기를 경계로 인위적으로 계절을 봄 여름 가을 겨울 등으로 구분한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요. 앞에서와 같이 구분하기 좋아하는 똑똑하다고 자만하는 인간이 그렇게 만들었겠지요. 안 그런가요. 이런 뚱딴지같은 생각을 하는 와중에 구름 잔뜩 낀 날씨에 보길 싫은 앙상한 가로수가 눈이 들어오네요. 우울해지게
 
 
말라버린 가로수는 어제와 같이 여전히 초라하게 그 자리에 힘없이 서 있어서, 마치 막대기를 움직이지 않게 땅에 꽂아 놓은 고사목처럼 느껴집니다. 누가 죽은 나무를 매일같이 보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푸르른 소나무는 혼자서 싱싱함을 뽐내고는 있지만은 그것만으로는 살아 숨 쉬는 자연을 만끽하기에 부족한가 봅니다. 제 마음이 소나무만으로 양이 차지 않은 것이지요.
 
 
베란다 앞 화단에 목련나무도 매화나무도 벚꽃도 가로수와 매한가지로 고사목처럼 쥐 죽은 듯 서 있습니다. 전에 이들 나무에 핀 꽃을 보았기에 그곳에 목련, 매화, 벚꽃 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만약 거기에 핀 꽃들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오늘 처음 이 나무들을 보았다면, 나무에 관심 없는 사람은 목련나무인지 매화나무인지 어떤 나무인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막대기처럼 서 있는 가로수 못지않게 꼴 보기 싫은 게 빛바랜 잔디 광장입니다. 노란 회색으로 뒤덮인 공원의 잔디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요. 차라리 흰 눈으로 덥인 겨울 공원 풍경이 훨씬 보기 좋습니다. 
 
 
오전에 잔뜩 흐린 날씨가 정오를 넘어서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식장에 다녀온 아내가 집에 들어오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비 온다고 알려주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실내에서 유심히 창밖을 보지 않으면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육안으로 식별이 안 되는 부슬비입니다. 올해 첫 봄비 지요
 
 
내 마음은 진작 봄을 맞이할 만만의 준비가 다 되어 있는데, 봄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 없나 봅니다. 속상하게 나만 속 태우는 짝사랑 같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따사로운 볕이 드리워진 들녘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강변과 도로변에 노란 개나리 꽃 피고 산에 연 분홍빛 진달래가 보이는 그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개나리꽃 활짝 핀 제주 (2021.3.3)

 
 
요즘 봄이 되면 아쉬운 게 또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 봄이면 햇병아리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눈에 잘 띄지 않아요. 애완견을 키우는 가정이 한집 건너 한 집만큼이나 많아졌는데 말이지요. 그 많이 키우던 노란 햇병아리는 다 어딜 갔을까요. 애완견으로 대체된 걸까요.
 
 
이런 저의 생각이나 느낌 등을 겨울이 들으면 기분 나쁠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겨울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각자 좋아하는 계절이 있을 것이고 계절에 취향이 다를 뿐입니다.
 
 
저도 중고시절까지 겨울을 좋아했습니다. 아버님이 농부이셨기 때문이지요. 그 당시 겨울에는 농사일이 없는 농한기이기에 아버님이 연중 쉴 수 있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제가 나이 들어서 그런지 지금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겨울보다 봄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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