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여보게, 자유를 원한다면 어영부영 살지 말게

kddhis 2025. 3. 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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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여 전의 일이다. 나는 취업시험에 합격하고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만큼 편했던 날이 없었다. 직장 상사 눈치 볼 일도 없었고 책임질 처자식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첫 직장을 잡았지만, 아직 출근 전이라 혼자 자취하면서 독서실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독서실과 자취방 오가는 길 중간쯤에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네를 탔던 그때가 내가 최고로 자유를 만끽하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그때가 참 좋았다.
 
 
햇볕이 눈부시게 따사로운 4월이나 5월 초였는데, 근심 걱정 없이 그네를 탔던 그 몇 날이 내게 평화요 자유요 힐링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그곳으로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
 
 
합격통지를 받은 몇 개월 후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래 수십 년 동안 책임감 하나로 직장 생활하고 가정을 꾸려가며 살아왔다.
 
 
직장인으로서 책임감이 있었기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월급 받아 민생고를 해결하고, 가장이란 책임감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으며, 장남이란 책임으로 부모님을 봉양하고 집안에 일이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나름 해왔다.
 
 
직장생활을 시작 이후 지금까지 내 얼굴이 뻔한 날이 없었다. 항시 얼굴은 지쳐 있었고 피곤에 쌓여 있었으며 무엇에 쫓기듯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다.
 
 
아마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빽도 없는 처지에서 정글 같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급하고 절박하게 살았던 것이다. 즉 경쟁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쟁에서 밀리면 직장생활 끝이니까. 
 
 
그렇게 긴장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얼굴은 찌들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과거에 찍은 사진 속에서 내 모습을 보면 지친 얼굴을 금방 알 수가 있다. 
 
 
30년이란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홀라당 흘러간 느낌이다. 한시도 여유 없이 급하게 달리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와 버린 것  같다. 왜 그리 여유 없이 살았을까. 아마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여러모로 나의 능력 부족밖에 다른 이유가 없다. 다 나의 부족한 탓이다. 누구 원망하겠는가.
 
 
3.1절 연휴를 맞아, 외출하지 않고 집에 처박혀 지내고 있다. 시간적 여유로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진작에 이런 여유를 가졌어야 했는데, 뭐 그리 바쁘게 살며 싸 돌아다녔는지 지금 생각하니 부질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별볼이 없는 각종 모임 쫓아다녔고 친구나 동료 만나 이런저런 취미생활 한답시고 바쁘게 살았지만, 인생을 관조하는 등 사색이 있는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잡다한 생활을 청산하고 조급해하지도 서둘지도 않으련다. 쓸데없이 바쁘게 살지도 않으려 한다. 30년 전 그네를 타던 그 순간처럼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련다.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고 싶기 때문에
 
 
워라밸을 추구하는 시대에 퇴근 이황의 自歎(자탄) 이란 한 시가 생각나는 휴일 아침이다. 
 

퇴계이황 초상화

 

자탄은 64세가 된 퇴계 이황이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도산서원에 머둘던 시기에 서울에서 찾아온 24세의 제자 김취려에게 준 한 시로
 
퇴계 자신은 늙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제자 김취려는 아직 젊으니 조급하게 서둘지도 말고 어영부영하지도 말고 꾸준히 배우고 익혀 큰 인물이 되라는 조언의 글이다.
 
 

自歎(자탄)

已去光陰吾所惜 (이거광음오소석)
當前功力子何傷 (당전공력자하상)
但從一貴爲山日 (단종일궤위산일)
莫自因循莫太忙 (막자인순막태망)
 
나에겐 이미 지나간 세월이라 애석할 뿐이지만
그대는 이제부터 하면 되니 달리 문제 있으리오
다만 조금씩 흙을 모아 산을 이루는 날까지 
너무 머뭇거리지도 말고 너무 서둘지도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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