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와 함께한 시간
주중은 직장인이고 주말은 농부이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말도 풀 깎으러 대추밭에 다녀왔다. 매년 초여름부터는 밭농사에 해를 입히는 잡초와의 전쟁을 치려야 한다.
올해는 잡초를 오랫동안 방치한 결과 풀이 억세지고 줄기가 굵어져서 예초작업에 애를 먹었다. 잡초가 억셀수록 예초기 칼날에 대항하는 잡초의 저항력이 켜진다. 따라서 힘을 실어 예초기를 옮겨야 억센 풀을 깎을 수 있다. 그만큼 손목에 힘이 들어간다.
작업 중 잠깐잠깐 휴식을 취한다. 작업에 집중력이 떨어지면 혹여나 안전사고가 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작업과 휴식의 반복에도 휴식의 효과마저 떨어지면 그날 작업을 끝마친다. 한 시간이 넘으면 팔에 힘이 빠져 더 이상 작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년 전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잡초 제거 농약을 뿌렸다. 그런데 제초제가 너무 세는지 일부 대추나무가 말라죽었다. 그 이후 제초제 대신 예초 매트를 깔고 예초기로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힘이 들지만 한편으로 재미도 있다. 예초기 칼날에 쓰러지는 큰 풀대에서 느껴오는 쾌감이 있다. 마치 낚시 바늘에 낚인 물고기 무게 느낌이 낚시 줄을 따고 낚싯대에까지 옮겨오는 짜릿한 손맛과도 같다.
일몰 시간이 지나 해는 떨어졌지만 해의 여운으로 남아있는 연한 빛이 대추밭에 드리워진다. 깔끔하게 깎여진 대추밭에는 대추나무만 우두커니 서 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잡풀이나 이름 모를 들꽃과 함께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한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쓸쓸해 보였다.
지나친 염려이고 걱정이다. 2.-3미터 떨어진 곳에 또 다른 대추나무가 있어 그들은 외롭지 않다. 오히려 잡풀보다 친근한 친족(?)이 있어 그들은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 지나친 착각이고 짧은 생각이다.
늦었지만 서둘러 예초작업을 한 것은 다음 주부터 장마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비 오면 예초가 어렸다. 앞으로 3개월 정도는 풀 걱정 안 해도 된다. 예초작업을 제 때 해줘야 힘이 덜 든다. 더 크기 전에 풀을 깎아 주어야 작업시간을 줄일 수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초보 농사꾼이 농사 체험에서 직접 얻은 깨달음이다.
이처럼 농사일에는 시기가 있다. 밭갈이, 씨 뿌리기, 모종 심기, 퇴비 주기, 잡초 제거 등 여러 가지 작업이 그 시기에 따라 일을 해 줘야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친다. 농사일을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무나 농부가 될 수 없다. 농부로 살려면 부지런해야 된다.
대추나무 묘목을 심은 지 7년째이다. 시간만큼 정이 들었다. 어떤 나무는 제법 커 자리를 확실히 잡았다. 주인이 풀을 깎는 말든 비료를 주든 제초 농약을 치든 관계없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봄이 오면 이들 대추나무에 파란 새 이파리가 돋아나 어느 순간 꽃을 피운다. 여름이면 한 껏 이파리가 커지면 새 줄기를 키우더니 그곳에서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 갈수록 파란색 대추가 커지며 주황 빛깔로 바뀐다. 겨울이면 뼈만 앙상한 빗자루모양으로 서 있다. 그리고 다음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긴 잠에 들어간다.
1년을 주기로 이렇게 순환하며 7년째 저와 함께하고 있는 대추나무, 과실의 기쁨과는 별게로 이곳에 오면 기분이 좋다. 거름 주기, 예초 매트 깔기, 전지 작업, 풀 깎기 등 힘든 노동이 있음에도 이곳이 좋다. 정이 그만큼 들었다. 특히 내가 처음 구입한 땅이기에 더 그렇다.
가끔 힘들 때나 울 쩍 할 때 이곳에 오면 기분 전환이 된다. 딱 트인 전망, 넓게 펼쳐진 내 땅이 있어 좋다. 그냥 이곳에 와서 대추밭만 보기 있어도 힐링이 된다. 갈 곳이 있어 기쁘다. 기분 전환하고 싶으면 여행이나 바다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이곳 대추밭에 오면 모든 게 해결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