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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유학 8

믿음 소망 사랑

by kddhis 2023. 12. 1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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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로 이사 온 후 우리 아이들은 '마리아 몬테소리' 사립학교에 다녔다. 아이들은 스쿨버스(승합차)를 타고 다녔기에 더 이상 아이들의 등하교 픽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들은 흰 티셔츠와 군청색 바지 교복을 입고 다녔다. 현관 앞에서 둘째 꼬맹이가 스쿨버스 놓친다고 빨리 가자고 보채면 큰 아들은 학교 갈 준비가 덜 된 것인지 느리게 행동해 둘째 아이의 속을 태웠다. 흰 교복을 입은 애들이 참 귀여웠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귀여웠던 아이들의 그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콘도미니엄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영어 배우러 한국에서 온 초등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아빠는 한국에 남고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필리핀에 온 가정이다. 한국의 엄마들의 교육열은 못 말린다. 세계에서 으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미래가 밝다.

 

 

둘째 아들 반에 한국 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필리핀 하숙집에서 기거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4학년 10살 어린아이였다. 부모가 어린 학생을 필리핀에 혼자 보낸 것이다. 어린아이만 혼자 보낸 학부모가 이해되지 않았다. 영어가 뭐 길래

 

 

지방교육도시 바욤봉에서는 그레이스 선생님(개인과외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쳐 주었는데 마닐라에 왔으니 우리는 새로운 과외 선생님을 구해야 했다.

 

 

필리핀 한인 인터넷 카페에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아이들이 다니는 마리아 몬테소리 스쿨 정보를 얻어 아이들을 입학시켰다. 이 인터넷 카페에서 과외 선생님을 소개받았지만 만족도가 떨어졌다.

 

 

아내와 나는 과외선생님을 직접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영어 과외 선생님 구함이라는 A4광고지를 만들어 필리핀 최고 명문대학교인 UP(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캠퍼스의 여러 게시판에 붙이고 다녔다. 모집광고를 보고 대학생들이 문자로 연락이 오면 우리가 직접 학생을 인터뷰하고 괜찮은 학생을 과외 선생님으로 모셨다. 하지만 그레이스 선생님만큼 좋은 과외 선생님을 만나지는 못했다.

 

 

마닐라에서 하루 일과는 심플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아이들을 등교시킨 다음 영어실력이 부족한 나는 근처 한국인이 운영하는 어학원에 다녔고 아내는 식음료 사려 마트에 가거나 현금 인출하러 ATM기가 있는 곳에 다녀오는 것 외에 대부분 집에서 보냈다. 아내는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아이들이 학교 간 시간에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마 아내는 그 시간에 인터넷 서핑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요일에는 필리핀 한인교회를 다녔다. 외국에 살면 한인 교회를 다녀야 한다. 교회에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목사님이나 장로님, 신도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솔라노 한인교회 목사님은 우리가 필리핀 공항에서 바욤봉 갈 때나 바욤봉에 마닐라도 이사할 때 목사님이 차량을 알선해 주셨다. 솔라노 목사님과 사모님은 선하고 선량한 분이셨다. 지금쯤 나이가 70이 넘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 신도들과 어울리다 보면 좋지 않은 일도 있다. 신도들끼리 시기, 질투도 있고 파벌이 생겨 다툼이 일어나는 걸 보았다. 차라리 서로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낫을 수도 있다. 어딜 가든 사람이 많이 모이면 꼭 다툼이 일어난다. 사람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아이들이 학교 간 후 오전 9시쯤, 코코넛을 파는 행상이 우리 콘도미니언 앞에 필리핀식 리어카를 끌고 나타났다. 흰 비닐봉지에는 코코넛 하얀 속살과 수액이 함께 들어 있었다. 한동안 코코넛을 사 마셨는데 나중에 시원한 코코넛 맛도 신물이 났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더라도 자주 먹으면 질리는 법이다.

 

 

마닐라에서는 대형마트나 영화관 갈 때는 택시를 타고 다녔다. 우리가 자주 다녔던 대형마트는 스타케이트와 SM몰이었다. 필리핀 인구가 많아서일까.. 필리핀 SM몰은 대한민국의 이마트보다 규모가 커 보였다. SM몰 중에 마닐라에 있는 “SM몰 오브 아시아매장이 가장 유명하다. SM몰 창업자는 신발을 팔아 거대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 기업가이다. SMShoes Maker의 약자다.

 

 

집 근처에 동네 마트도 이용했다. 동네 마트는 집(콘도미니엄)에서 주택가를 지나 10분 정도 걸어가면 다 달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필리핀에서 아내와 함께 거닐었던 유일한 장소가 동네 마트와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콘도미니엄 사이 주택가 길이였다. 한 번은 수박을 사서 들고 온 적도 있었다.

 

 

집 근처에 한국 상점도 있었다. 쌀 과자, 라면 같은 한국식품을 먹고 싶으면 한국 상점에서 가곤 했다. 가격은 좀 비쌌다. 한인 마트에도 총으로 무장한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우리나라만큼 안전한 나라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복 받은 나라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잘 적응하고 지냈지만 아쉬움도 많았. 너무 공부에 집중하다 보니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 적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공부를 덜 하고 추억을 더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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