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나온 아내는 에어컨 앞 거실에 드려 눕었다. 33도까지 올라간 더운 날씨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올해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한 달 이상 무더위와 함께 지내야 한다. 아내처럼 더위를 타는 사람에게 이런 날씨가 곤욕일 것이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수십 년 전 국민학교 시절, 그때도 7월 이맘 때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에도 더웠다.
매일 같이 시냇가에 가서 물놀이하고 지냈다. 고기 잡고 물장구치고 동네입구 빈 공터에서 땅바닥에 선을 그리고 게임을 하면서 더운 줄 모르고 뛰어놀았다. 그 게임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8월 개학날까지 신나게 놀고 나면 어느새 학교 갈 날이 다가온다. 개학일이 다가오면 하지 않은 방학숙제가 걱정거리로 나를 괴롭혔다.
용감하게도 방학숙제를 하지 않은 채 학교에 갔다. 그럼 학교에서 벌을 받는다. 그땐 체벌이 강했다. 막대기로 손바닥을 맞는 것은 기본이고 몽둥이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엉덩을 맞았다.
선생의 폭력이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시절이었다. 선생의 폭력은 고등학교까지 계속되었다. 우리 학교 다닐 땐 그랬다. 이런 기억으로 난 선생을 존경하지 않는다.
이처럼 국민학교 6학년 동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친구들과 놀기 바빴다. 습관이 무섭다. 공부하지 않는 버릇이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공부와 담을 쌓고 초중고 12년을 보낸 것이다.
문제는 성인이 되어 먹고살기 위해 직장을 잡아야 하는데 배운 게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시 말해 취업이 안 됐다. 그래서 24살, 늦은 나이에 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가 잘 될 리가 없었다. 3년 동안 어디 안 가고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고 죽으라고 공부를 했는데도 성과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속된 말로 환장하고 미칠 것 같았다. 심한 스트레스로 몸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하지만 퍼부은 공부는 배신하지 않았다. 3년 넘게 읽고 이해하고 쓰고 기억하는 등의 공부라는 행위를 반복한 결과 쉽게 직장을 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다. 가진 게 없고 미래도 불투명했지만 젊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음과 희망이 있었기에 혼밥 먹어가면 나 혼자라는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똑 같이 공부를 열심히 했을 것이다. 왜냐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생존이 달려있으니 공부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금수저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 공부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이면 뜨겁게 보냈던 20대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내 청춘을 다 받쳤던 그 시절,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20대 청년시절, 잠자고 공부했던 그 독서실이 생각난다.
보잘것없었던 20대 청년이 도서설 형광등 불빛아래서 살아보려고 늦은 밤까지 몸부림쳤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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