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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병사

믿음 소망 사랑

by kddhis 2023. 10. 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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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에 알려진 유명한 동물원 원숭이 실험을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조그만 동물원을 만들어 가운데 장대를 세워 놓고 장대 꼭대기에 바나나를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원숭이 4 마리를 들어 보냈다. 원숭이들은 바나나를 먹기 위해 장대에 오릅니다. 그러나 장대에 오른 원숭이에게 물을 뿌립니다. 깜짝 놀란 원숭이는 바닥으로 내려온다. 몇 번 시도하다가 물세례를 맞은 원숭이는 마침내 바나나를 포기하고 더 이상 장대를 오르지 않는다.

 

 

이후  2마리 원숭이를 동물원에서 내보내고 신규 원숭이 2마리를 들어 보낸다. 멋모른 신규 원숭이가 장대에 오르자 기존 2마리 원숭이가 신규 원숭이를 끌러 내린다. 그리고 신규 원숭이도 더 이상 장대에 있는 바나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기존 2마리 마저 동물원 밖으로 내보내고 대신 신참 원숭이 2마리를 동물원에 들어 보낸다. 신참 원숭이가 장대에 올라가자 먼저 동물원에 들어온 신규 원숭이가 신참 원숭이를 끌어내린다. 이후 영문도 모른 체 신규도 신참도 더 이상 바나나가 걸려있는 장대에 올라가지 않는다.

 

 

이 실험에서 원숭이를 계속 교체하여도 원숭이들은 장대를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관찰되었다. 나중에 동물원에 들어온 원숭이들은 왜 장대를 올라가면 안 되는지, 무엇 때문에 바나나를 먹을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모른 체 바나나가 있는 장대에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원숭이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물을 뿌리기에 바나나를 얻을 수 없지만 원숭이끼리 목마를 태워 최위층에 있는 원숭이가 긴 팔을 뻗거나 막대기를 이용하여 바나나를 얻을 수 있도 있는데도 그런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동물원에 사는 원숭이들은 과거에서 내려온 관습을 따라 살아가기 때문이다. 원숭이들은 동물원 관습을 당연하게 여기며 따르기에 나타는 원숭이 사회 현상이다.

 

 

원숭이를 어리석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여기 동물원 원숭이 같은 병사가 있다. 제정 러시아 시대 병사가 잡초가 무성한 성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장교가 성문 앞을 지키고 있는 병사에게 물었다. "귀하는 왜 여기에서 보초를 서고 있나?". 그러자 병사는 예전부터 선임 병사들이 이곳을 계속 지켜왔습니다.”라고 답변했다.

 

 

폐허가 된 성을 지키는 이유가 궁금했던 장교는 여러 경로를 통해 과거 근무했던 군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그 원인을 알아냈다. 수십 년 전에 이곳을 지나던 황후가 성안에 피어있는 장미가 너무 아름다워 병사를 배치하여 장미 정원을 지키라고 명령하였고 그 이후에 병사가 성 앞에서 보초를 섰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려 황후가 죽고 수년의 시간이 또 지나 성을 지킬 이유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병사들은 폐허가 된 성문 앞에서 보초를 서는 이유를 모른 체 예전에 하던 대로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동물원 원숭이나 러시아 병사 사례처럼 우리도 가정, 학교, 직장, 사회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 그 이유를 모른 체 습관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딘가 이상하고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임이 해 오던 대로 따라 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가 조직이 부서가 전임자가 해왔기에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고 옳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비판적 사고가 결여된 상태에서 사회습관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내가 러시아 병사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닐까.

 

 

직장에서 선임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지 마라. 새로운 시각에서 전임자가 해왔던 업무 프로세스를 상세히 살펴 개선할 점은 없는지 혹시 잘못된 점은 없는지 찾아내 고치고 수정하라. 이러한 비판적 사고로 업무에 임한다면 혁신적인 직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임자가 했던 대로 따라 하는 사람에게 혁신은 고사하고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사실 우리 뇌는 남이 하던 대로 따라 하는 행위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습관들인 대로 하면  뇌는 신경을 쓸 필요 없고 그로 인해 뇌는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가 시키는 대로 내버려 두면 절대로 안 된다. 뇌가 싫어하는 행동을 할 때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에너지 소모 때문에 뇌는 새로운 시도, 다른 생각 다른 행동, 과거 방식 탈출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명시하라.

 

 

더더욱 타성에 젖어 이 시간까지만, 여기까지만, 이만 치만, 이 정도만, 남이 하는 만큼만 일하는 직장 풍토가 당연시되는 시대다. 워라밸(일과 개인생활 사이 균형)은 있고 배고픔 절실함 간절함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꾸역꾸역 자기 맡은 일만 하는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글쎄다. 남을 따라 할  필요 없다. 무비판적으로 다수에 편승하지 마라. 자신의 직관을 믿고 자기 방식대로 하면 된다.

 

 

일본 메이지 유신의 주역인 <가쓰 가이슈>는  남눈치 보지 않는 자기 주관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은 나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나를 폄하하든 칭찬하든 그 모든 것은 그의 마음이다. 나는 그것에 상관하지 않는다. 누가 어떤 말을 하든 지적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메이지 시대에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 개혁 성향의 정치가로 일본 근대 자본주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독불장군이 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기주장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주장에 이유와 근거를 댈 수 있고 사례와 예시까지 보여 주었을 때  <가쓰 가이슈>처럼  자기 주관이 있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이처럼 확고한 자기 주관과 자신감은 갖기 위해서는 자기 역량을 키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자기 계발은 책이나 강의에서 따로 배우는 게 아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생각과 관념만으로는 절대로 혁신도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혁신은 관념의 세상이 아닌 현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오직 현장에서 해보고 깨지고 넘어지고 그러면서 배우고 바꿔보고 고쳐보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자기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성장은 노력에 절실함을 더해지면 의외로 성과는 빠르게 우리 앞에 나타난다. 집중력을 높여라. 피봇이나 린스타트업처럼 실행하다가 이게 아니면 수정하든가 빠르게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 배움을 가지고 또 다른 더 높은 지식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아이는 걷기 위해 수십 번을 넘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성인도 아이처럼 성장하기 위해 실패하고 좌절하고 또 실수할 수 있다. 그러니 부족함을 인정하라. 그러면 마음이 편하고 배울 수 있다.

 

 

이것만은 잊지 말자. 성취와 변화를 이루고 스마트한 두뇌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확고한 자기 주관을 갖고 자기 방식대로 해보고 넘어져도 또 시도하고 그래도 재차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지루한 반복을 계속하는 것 말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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