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가스 토치로 숯을 달구는데 좀처럼 불이 붙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우리의 노력 끝에 숯이 빨갛게 불이 붙자 그 위에 철망을 얹어 놓고 목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삼겹살 기름이 숯불에 떨어지면서 불꽃이 위로 솟구쳐 자칫 힘들게 구운 고기를 태울 기세다. 이에 질세라 석쇠를 동 채로 들어 불꽃을 피해 본다. 고기가 숯덩이 되는 것을 그냥 둘 순 없었다.
여기는 동료A 아버님의 주택 앞마당이다. 이 전원주택은 30년 전에 아버님께서 지셨단다.(물론 건축업자가 주택을 지었고 아버님은 주택소유자다.). 팔순이 훌쩍 넘으신 아버님은 이 주택에서 혼자 사신다.
A는 야외 고기파티에 아버님의 주택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남자 여섯 명은 한쪽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숯불에 구운 고기에 술 한 잔을 하며 늦가을 낭만을 만끽하는 중이다. 가을은 낭만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겨울이 임박한 11월 하순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야외에서 고기 파티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오늘이 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더 추워지기 전에 오늘 거사를 단행한 것이다.
하지만 야외 밤공기는 차가웠다. 우리는 애써 날씨가 춥지 않다고 서로에게 위안의 말을 주고받지만 그렇다고 추운 날씨가 포근해지지 않는다. 날씨가 좋다면 모닥불을 피우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추위를 더 타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모닥불을 피운 이유는 주변을 밝히기 위해서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삼겹살을 굽는데 열중했다. 배고프니까
삼겹살이 익자. 가위로 먹기 좋게 여러 조각으로 자른 다음 집어 먹기 시작했다. 퇴근하자마자 사무실에서 이곳까지 이동시간, 숯불을 피운 시간, 고기를 익히는 시간까지 합치면 보통 때 보다 저녁식사가 늦어졌다. 처음 몇 점의 구운 고기는 한 마디로 달콤하고 굴 맛이었다.
삼겹살을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상추에 고기와 쌈장을 넣고 싸 먹으면서 동료들은 소주잔을 곁들이는데 나는 술을 못하기에 대신 음료수를 마셨다.
A의 아버님은 낮술을 마셔서 술기운에 얼굴이 붉고 발음이 명확하지 않다. 말씀이 또박또박 들리지 않고 흐물흐물해서 뭔 소리인지 들릴 듯 말 듯 알아들을 수가 없다. 주의 깊게 들어도 좀처럼 해석이 불가능하다. 어림짐작으로 듣고 답하는 대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님이 혼자 사셔서 외로우셨던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여기에 아버님이 사람을 좋아하는 천성일 수도 있다. 아버님은 배추 한 통을 어디서 가져오셨다.. 새하얀 배추 속을 씹어 먹기도 하고 고기를 싸 먹기도 했다. 야외에서 고기와 함께 먹는 배추 속잎의 맛은 상큼하고 단맛이 낫다.
아버님은 술기운 때문인지 아들의 동료들이 와서 기분이 좋아서 인지 알 수 없지만 아버님은 집안 밖으로 왔다 갔다 들락거리셨다.
아버님은 집밖으로 나오시면서 한 손에 큰 플라스틱 술병을 들고 오셨다. “이것 담근 칡 술, 맛있어, 한 번 마셔 바” 대충 이렇게 말씀하셨다.(누구나 술에 취하면 말이 꼬인다.)
칡 담근 술이 참이슬 보다 입에 착 달라붙어 그 느낌이 좋고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가서일까.. 애주가들은 참이슬을 제쳐두고 칡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삼겹살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며 특별한 내용 없는 대화를 하며 그렇게 시간은 흘려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고기 먹는 속도가 늘어지고 초반에 잘 팔리던 고기는 석쇠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숯불의 불꽃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초대한 동료가 급하게 술을 마셨는지 혼자 술에 취해버렸다. 숯불 앞에서 기웃 뚱 거리고 서있는 그의 모습이 위태롭게 보였다.
이제 파티를 끝 낼 시간이 다가왔다. 여기저기 흩어진 음식과 쓰레기를 빠르게 정리하고 이곳을 떠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동료가 술에 취했고 오늘은 월요일이다. 내일 일터로 가야 하는 우리는 직장인, 여기서 시간과 에너지를 더 소진한다면 내일 직장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게 뻔하다.
사실 이보다 나는 술을 못하기 때문에 술이 곁들여진 회식이나 이런 야외 파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산책하며 사색을 좋아한다. 내 성격이면 취향이다.
하지만 동료가 어렵게 자기 아버님 집으로 초대했는데 거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무례한 짓이라고 해서 야외 고기파티에 동참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오늘 이 고기파티에서 무엇을 얻은 것일까. 술과 고기가 좋아서 이곳에 온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 역시 먹고 마시는 것 외에 무슨 의미로 이곳에 왔을까.
끈끈한 동료애, 아름다운 가을밤의 추억 만들기, 일상에서 탈출, 바쁜 생활에서 잠깐의 외도, 집에서 잠깐 벗어나고 싶은 충동,,,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다. 그래서 오늘 야외 고기파티가 옮고 그름 좋고 나쁨은 없다. 파티에서 각자가 얻어 가는 것도 느끼는 것도 재미도 흥미도 즐거움도 각각 다를 것이다. 이런 생각도 또한 든다. “뭔가를 꼭 얻어가야 할까?” 좋으면 그만이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뭐라도 배워서 다음에는 더 발전적이고 건전한 시간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초청한 동료는 매우 사교적이다. 그의 성격이 부럽다. 번거로움을 생각하지고 않은 채 직원들을 아버님 댁 앞마당에 초대하는 행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지금처럼 개인주의 경향이 강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의 사교성에 빛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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