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씨 때문일까. 기분이 착 가라앉아 우울하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님을 뵙는 날이다. 그렇다고 울적한 표정으로 어머님을 뵐 수는 없다.
어머님을 만나면 점심은 무엇을 드셨어요? 몸은 어떠세요? 춥지는 않으세요? 등 이런 인사말을 건네면 더 이상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다.
내 배 한가운데 배꼽을 비겨서 직선으로 12센티미터 긴 흉터가 있다. 오늘은 어머님께 이 흉터가 생기게 된 사건을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님께 물었다.
"어머니, 배 수술은 몇 살 때 한 건가요?
"니가 태어나서 7개월가량 지나 한 수술이다. 니가 피똥을 싸서 병원에 갔었다."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배 수술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내가 태어난 후 7개월쯤 , 피똥을 싸고 아프다고 뒹굴어서 병원으로 데려간 것이다. 의사는 갓난아이의 배를 가르고 순대처럼 생긴 작은 창자, 큰창자를 어머님께 보여드리며 창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을 했는데 그걸 보신 어머님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고 한다.
수술 후 얼마 동안 가난 아이가 젖을 먹을 수 없어 어머님의 젖이 불어서 유착기로 짜냈다고 한다. 퇴원 후에도 가난 아이는 젖이나 미음을 먹었지만 자주 설사를 하고 토했다고 한다. 어머님은 아이가 수술을 받아쓴데 비실비실 거리고 먹지도 못하고 설사하고 토하니 죽을지 살지 걱정이 되었답니다.
갓 태어난 아이의 창자를 잘라내고 붙이고 했으니 장기능이 정상으로 작동했겠습니까. 의사 선생님은 어머님께 어린아이가 장 수술을 했기에 일정 기간이 지나야 장기능이 정상화될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님은 안심을 했고 정성을 들여 아이를 돌봤다고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수술을 해서 아이의 목숨은 건졌는데 문제는 수술비용이었다. 1960년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다. 시골 가정에서 큰돈이 어디 있었겠는가. 급하게 동네 부잣집에서 돈을 빌려 수술비를 납부했다고 한다. 어머님은 수술비가 얼마가 들어가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소를 팔아 빌린 돈을 갚았는데 당시 소값이 3백만원이었다고 한다. 수술비가 황소 한 마리 값이었던 것이다.
당시 황소는 농촌에서는 중요한 자산이며 일꾼이었던 때다. 시골집에서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하던 시절이다. 지금이야 경운기, 트럭터로 논밭을 갈아 벼농사 밭농사를 짓지만 1970년대 이전에는 소가 논밭을 갈았다. 소가 없는 집은 쟁기질하는 소를 빌려 왔는데 성인 인건비보다 몇 배 많이 주었다고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머님은 언니에게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해서 2백만원을 얻어 소를 샀는데 돈이 부족해 쟁기질하는 큰 소를 못 사고 작은 소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겨울에 구입한 작은 소를 몇 달을 키워 이듬에 봄이 지나 이른 여름에 소를 논으로 데리고 가서 쟁기질을 가르쳤다고 한다. 어머님은 앞에서 소를 끌고 아버님은 쟁기를 붙잡고 소가 쟁기길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 것이다. 먹고살기 참 힘들 시절이었다.
핏덩이 어린 나이에 아팠던 나의 과거를 알고 나니. 난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계를 찾은 수 없었지만 1960년대 영아 사망률이 높았을 것이다. 그 당시 돈이 없어 의료 혜택을 못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아파도 병원비가 없어 집에서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죽은 아이가 많았다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다행히 우리 집에 황소 한 마리가 있어서 그나마 내가 살아난 것이다. 이게 운명일까. 교통사고 등 쉽게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질긴 게 또한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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