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어제부터 기침하고 머리와 목이 아프다며 끙끙거렸다. 아침에 병자처럼 콜록콜록 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아픈 게 어제보다 심해졌다.
안 되겠다 싶어 아내를 데리고 이비인후과에 갔다. 9시부터 진료가 시작되기에 미리 대기하고 있어야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진료시작 30분 전에 병원에 도착했다.
우리보다 먼저 온 대기 환자가 10명 정도 되었다. 9시부터 순번에 따라 의사 선생님의 진료가 시작되었고 얼마 안 있어 아내 차례가 돌아왔다. 검사결과 아내는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 주사 한 대 맞고 약국에서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필리핀에 온 이후 우리 중에 제일 먼저 아픈 사람이 바로 아내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열이 나고 온몸이 아프다고 했다. 그때도 이불을 뒤 집어 쓰고 끙끙 앓았다. 아내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는 나까지 고통스러웠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 먹고 나았지만 한동안 집안이 엉망이었다. 가정에 엄마가 아파 누우면 집안이 엉망이 된다. 그때 우리 집이 그렇다.
아내가 아팠을 때 학교에서 아이들 운동회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아내는 집에 있고 나 혼자 운동회가 열리는 체육관에 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학생들의 운동회 준비물은 아프리카 복장과 우산이었다.
둘째 아들반 학생들은 아프리카 복장을 하고 우산을 들고 춤을 추는 포퍼먼스를 학부모들에게 선보였다. 그런데 둘째 아들의 우산이 펴지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은 자기 우산을 펼쳐 들고 춤을 추는데 딱 한 명, 외국인 학생, 둘째 아들의 우산만 말썽을 부린 것이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필리핀 엄마들이 나를 보고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An umbreniia of your son does not open.". 관중석에 앉아 있는 나는 참 난감했다. 우산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아빠였고 엄마의 빈자리가 컸던 아이들의 필리핀 초등학교 첫 운동회였다.
그래도 아들은 굳굳히 이벤트를 잘 소화해 내고 있었다. 아들은 펴지지 않은 우산을 들고 주눅 들지 않고 재미났게 춤을 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챙피했을 텐데 말이다. 아들의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초등생 3학년 아들은 필리핀 친구들과 잘 지냈다.
언제부터인가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는데 나의 얼굴이 붉어지며 피부가 가려웠다. 나중에 망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에 망고를 먹고 옻이 오른 것이었다. 망고가 옺나무과에 속한 과일이라는 것을 미처 모르고 옻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망고를 겁 없이 먹었던 것이다.
마닐라로 이사 온 후에 나는 목감기로 고생을 했다. 조금 지나면 났겠지 하고 방치했는데 좀처럼 감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종합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약 먹고 나았다. 필리핀은 우리나라처럼 공공의료 시스템이 없어 병원비와 약값이 비싸다.
눈병에 걸린 것 말고는 아이들은 아프지 않고 잘 지냈다. 두 아들이 동시에 학교에서 눈병을 옮아와서 안과에 가서 진찰받고 눈병치료 안약을 처방받아 나았다.
외국에서 몸이 아프면 한국에서보다 더 걱정이 된다. 개인 병원도 많지 않고 치료비도 비씨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큼 공공의료시스템 잘 가줘 진 나라는 아마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환자의 병원 접근성이 매우 높은 나라임은 분명하다.
우리 가족은 필리핀에서 아프기도 하고 병원도 다니면서 필리핀 생활에 적응하면 살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