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와 고구마 모종을 1시간가량 심고 나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비가 오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하기에 쉬지 않고 일한 탓이다.
밭 일을 하다가 힘에 부치면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이 난다. 나야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이나 휴일에 농사일을 하지만, 아버님은 처자식 먹여 살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기 싫은 힘든 농사일을 억지로 하셨다.
장남인 아버님은 시골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여건에서 농사일은 아버님에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고역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농사를 지어봤자 소득이 변변치 않았음에도 꾸역꾸역 80 평생을 농부로 사셨다.
운명의 장난치고는 장난이 심했다. 만약 신이 있다면 따지고 싶다. " 신이여, 왜 나약하고 심성이 바른 아버님이 이토록 평생을 시골에서 부모님을 모시면서 힘들게 농사일을 하게 했냐고?"
일이 힘에 부질 때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 말이 뛰어나온다. " 아버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내는 내 말이 듣기 싫은 듯 짜증스럽게 말한다. " 왜, 좋지 않은 과거를 생각하세요."
아버님은 젊어서 허리를 다쳐 나이가 들어 갈수록 허리가 굳어지고 왜소해지셔서 농사 일하고는 맞지 않은 신체조건이었다. 그럼에도 아버님은 쉬지 않으시고 80 평생을 성실하게 농사일을 하셨다.
아버님은 체력이 뒤받침되지 않아서 온몸으로 일을 하셨다. 다시 말해 무거운 짐을 옮길 때 팔과 허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기에 가슴 등 온몸의 근육을 이용하셨다.
나는 농사일로 힘들어하셨던 아버님을 지켜보면서 자랐다. 그래서 내가 육체적으로 힘이 들 때면 아버님이 생각나고 무의식적으로 이 말을 내뱄는다. "아버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내가 듣기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내 뇌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만둘 수 있겠지만. 검소한 아버님은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하셨다.
아버님은 힘든 농사일을 일평생 하셨지만 단 한 번도 농사일에 자식을 부려먹지 않으셨다. 참 선량한 아버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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