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서 커튼을 걷으니, 일기예보에 없었던 소나기 내리고 있었다. 맑은 하늘에서 빗방울이 굵게 떨어지고 있었다.
소나기를 보면서 옛날이야기가 떠오른다.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 소설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릴 적 내 이야기다.
보릿고개 시절이 막 지난 1960년대 후반, 제가 국민학교 저학년 때 일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오늘처럼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쫄딱 비를 맞으며 혼자 논밭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학교와 집 중간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우리와 함께 사는 사촌 누나가 마중 나와 나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누나는 나보다 나이가 네 살이나 다섯 살 위였다. 당시 내가 1학년이나 2학년이었고 누나는 아마 5학년이나 6학년에 다녔을 것으로 추축이 된다.
마중 나온 누나에 대한 기억이 내 머릿속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 기억이 어제 일처럼 뚜렷하다.
오늘처럼 소나기가 내리면 가끔 누나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 누나는 국민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올라갔다.
당시 시골 여자학생은 대체로 국민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도시로 가서 우리 누나처럼 공장에서 일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에 여자는 공순이가 되었고 남자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때는 남녀 차별이 분명히 있던 시절이어서 그랬던 것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후 누나는 결혼해서 딸 하나를 낳고 알콩달콩 살았는데 그 행복한 기간은 길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누나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너무나도 일찍 하늘나라로 가 버렸다.
지금 누나가 살아있다면 나와 나이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 서로 왕래하면 옛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무지 아쉽다.
나는 집안의 맏이다. 그래서 남녀 동생들이 있어도 나 위로 형이나 누가가 없다. 살면서 이게 좀 아쉽고 속상했다.
나에게도 형이나 누가가 있었다면 그들의 인생을 벤치마킹하여 배울 수도 있고 그들에게 삶의 조언도 구했을 텐데,
더불어 형이나 누나로부터 정신적인 도움이나 위안을 받았거나 하다못해 의지라고 되었을 텐데, 살면서 그런 형이나 누나가 없어서 아쉬웠다.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 그 누나가 보고 싶어 진다. 만약 누나가 살아있다면 함께 저녁을 먹으며 누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을 텐데.
"국민학교 다닐 때, 오늘처럼 소나기가 내리 던 어느 날, 누나가 마중을 나와 주어서 정말 행복했어, 고마웠어,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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