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바퀴에 돌멩이 뛰기는 소리를 내며 승합차는 기우뚱기우뚱 느리게 한참을 달렸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운전기사는 차를 세우고 여기서부터 걸어서 가라고 탑승자에게 말했다. 출발 지점까지 태워 줄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 규정상 이곳까지만 차량을 운행한다는 뉘앙스로 말한 운전기사에게 산 밑에까지 데려다주라고 하소연하고 항의하고 떼를 쓴다고 들어줄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아무도 운전기사에게 대항하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태워 준 것도 고마운데 어찌 불만을 터트릴 수 있겠는가. 감사할 따름이지
아쉬웠지만 우리는 차에서 내려 그 지점부터 걸어서 내려왔다. 이곳까지 차를 타고 내려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우리는 비포장 도로를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걷는 것에 신체가 적응되었는지 아니면 내리막길 때문인지는 몰라도 산을 올라갈 때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1시간가량 걸어서 출발 지점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시간은 흘러 5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산행을 오전 8시 30분경에 시작했으니 9시간가량 진부령 향로봉에 머물렀던 것이다. 참으로 긴 시간 동안 산속에서 있었다.
아내는 내려오는 동안 업무 관계로 사무실 직원과 긴 통화를 하며 걷다가 서다가를 반복하며 굼벵이처럼 느리게 걸었다. 아내의 느린 행보에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아내의 걸음에 보조를 맞출 수 없었는지 아들은 저 멀리 앞서갔고 나는 아내가 걱정되어 아내를 기다리다 다시 앞서가다가를 여러 번 되풀이하며 아내의 걸음에 맞추어 걸었다.
이윽고 끝이 보였다. 마침내 출발 지점에 아무런 사고 없이 도달했다. 우리는 서둘러 행사 버스를 타고 집결지인 고성종합 운동장으로 가야 했다. 트레킹대회가 끝났으니,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버스 타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행사 주체 측으로부터 개인당 2만원 상당의 고성군 지역 상품권을 받았는데 우리는 상품권을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참가자들은 트레킹 참가비로 3만원을 납부했는데, 그 참가비 중에서 지역 상품권을 구입하여 참가자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이곳 진부령 정상 군부대 앞에서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지체했다간 다음 버스를 타야 하고 그러면 집에 늦게 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되도록 빨리 상품권을 소진시켜야 했다.
햇빛은 온데간데없고 구름 낀 석양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몇십 분 늦게 출발했다간 6시가 넘어가고 어두워지면 밤길 운전을 오랫동안 해야 할 판이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하는 게 여러모로 오른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한 이곳을 빨리 탈출해야 했다.
행사장에 지역 상품을 판매하는 부스가 서너 개가 연달아 줄지어 있었다. 파는 상품은 대체로 지역특산물인 진부령 황태포였다. 황태포와 감자빈대떡 말고는 다른 판매 물건은 기억이 나지 않았는다. 그 당시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황태포 6만원어치를 사서 황급히 버스에 올라탔다.
드디어 버스는 진부령 정상 부대 앞 도로에서 우리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고성종합 운동장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곳 진부령 정상에 언제 올지 모르지만 당분간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진부령 정상을 서둘러 떠났다.
아마 오늘 향로봉 트레킹대회는 우리 가족에게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가족 여행이 있었지만, 향로봉 등반도 소중한 가족여행 중 하나로 간직될 것이다. 9시간 향로봉 보도 여행은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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