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에 못처럼 산책을 했다. 겨울날씨 때문에 점심을 먹으면 으레 바로 사무실로 들어갔는데, 오늘은 나름 용기 내어 혼자서 걸었다.
아직도 겨울이고 바람도 차갑지만, 햇빛은 봄날처럼 따사로웠다. 바람만 불지 않으면 영락없는 봄날이었다. 눈부신 태양은 여름에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2월 막바지 추운 겨울인데도, 태양은 찬란하게 빛났다.
밝은 빛을 맞으며 비탈진 주택가를 가로질러 마을 꼭대기 있는 충령탑 공원까지 2킬로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를 걸었다.
충령탑 공원까지 갔다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 동네 한 바퀴 산책코스로는 짧았지만, 우리 사무실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충령탑 공원 밖에 없다. 어딜 가 싱그러운 초록을 보고 자연을 즐긴단 말인가. 이곳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주택가 꼭대기에 위치한 충령탑 공원은 코딱지만큼이나 아주 작은 공원이다. 사실 공원이라고 할 것도 없다. 충령탑이 높게 서 있고, 그 앞에 광장이 있고 공원 출입구 쪽에 간단한 운동기구 두세 개가 설치되어 있는 게 전부다. 그리고 편백나무들이 공원을 감싸고 있었다.
하늘 높이 굳게 솟아 있는 키 큰 편백나무들은 이 공원이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편백나무는 마치 호국영령을 지키는 병사처럼 누구나 함부로 충령탑에 들어오지 못하도로 보초를 서고 있는 듯했다.
갈색의 편백나무에는 색 파랜 가느다란 이파리가 조금 붙어있었다. 이파리가 갈색으로 변해 말라 비뚤어져 나무줄기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편백나무는 나무 전봇대처럼 우뚝 서 있는 형상이 죽은 나무처럼 보였다.
고개를 들어 편백나무를 보면서 비탈진 골목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구슬픈 연주 소리가 들렸다. 연주자나 악기를 직접 볼 수 없었지만, 들리는 음향으로 판단해 보건대 전자올겐 연주 소리 같았다. 가버린 세월에 대해 아쉬움을 달려는 그런 노래였다. 그게 내 마음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옛날 슬픈 가요였지만, 어떤 노래인지는 기억에 나지 않는다.
전자올겐 연주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 것은 주택가가 조용해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이런 한가한 산책길을 좋아한다. 읍지역 주택가라서 그런지 행인들은 없었고, 공원 체육시설에서 운동하는 할아버지 2분 빼고는 공원에 아무도 없었다.
추운 날씨이지만 햇빛을 맞으며 걷기에 부족함이 있었다. 여전히 대로변 화단은 갈색으로 덮여있고 사무실 주차장 경계면에 볼품없이 서 있는 목련 꽃봉오리는 움틀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을 지날 때면 유심히 목련을 보지만, 오늘도 여전히 꽃망울은 변함이 없었다.
아직 목련꽃이 필 때가 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하지만 꽃봉오리가 터질 날이 머지않았다. 넉넉잡고 앞으로 2주쯤 되면 목련 꽃이 살짝 웃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며칠만 지나면 3월, 봄이니까. 우리는 알고 있다. 어느 순간 목련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필 거라는 것을. 특히 밤에 피면 더욱 모른다.
고객을 숙이고 사무실 화단을 유심히 보니, 갈색 잔디옆으로 이름 모를 식물이 푸른색을 띠며 봄의 전령처럼 계절의 바뀜을 소리소문 없이 알리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가 무심해서 움튼 생명체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게 겨울은 떠날 채비를 하고 봄은 조용히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제 우리도 봄 맞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봄이 시작되는 3월이 되려면 아직 며칠이 남았는데도 내 마음에는 벌써 오지 않은 새봄이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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