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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은혜

믿음 소망 사랑

by kddhis 2023. 9. 2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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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제대 후  8개월간 알바를 했다. 그땐 막막했다. 꿈도 희망도 아무런 의욕 없이 살았다. 알바하며 먹고 자고 싸고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생활이 야생 동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어둡고 칙칙한 생활을 8개월간 했다. 돌이켜보면 딱히 배운 것, 가진 것, 잘하는 것 그 어느 하나 없었기에 꿈도 희망도 미래도 꿈꾸지 못했던 것이다.

 

 

날 벼락을 맞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살며 안 되겠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쳤다. 지금도 그때 그런 생각이 왜 갑자기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할 지에 대해 나 자신에게 물고 물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알바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딱히 갈 곳에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특별한 기술도 배움도 지식도 학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공부밖에..., 알바를 그만뒀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알바로 번 돈 중 일부는 아버님께 드렸고 나머지는 학원비, 독서실비 등 생활비로 썼다.

 

 

아버님은 제가 드린 돈으로 송아지를 사셨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그 송아지를 몇 해 키워 여러 마리로 늘어나서 한 때 아버님은 소를 30마리까지 키우셨다. 6년 후 제가 결혼할 때 소를 팔아 전세방과 결혼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공부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알바에서 번 돈이 떨어졌다. 이후 아버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아 썼다. 농부셨던 아버님에게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 당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50대 이상 되신 분은 아시겠지만 1980년대까지 농촌 살림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농부이신 아버님도 다르지 않았다.

 

 

다행히 아버님은 자식 공부하는데 적극적으로 밀어주셨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나로서는 아버님으로부터 생활비를 받아쓰는 게 상당히 부담이 되었다. 용돈을 받을 때마다 죄스러웠다. 그만큼 아버님 형편이 어려웠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인 셋째 동생과 같이 자취를 했는데 동생이 졸업하고 직장 따라 다른 도시로 떠나버렸다. 나 혼자 남았다. 그때가 공부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어갔을 때였다. 고민 끝에 생활비를 아껴볼 요령으로 잠을 독서실에서 자고 밥은 숙부님 댁에서 먹고 다니면 되겠구나 생각을 하고 작은 아버님께 부탁했다. 그러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또 다른 작은아버님께 양해를 구해 숙부 집에서 아침을 먹고 숙모님이 도시락 두 개를 쌓아 주셨다. 그 도시락을 먹고 학원과 도서실을 다녔다. 하지만 문제는 도시락이 부실했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밥에 김치가 전부였다. 아무리 팔팔한 20대 청년이지만 그래도 기본 체력이 있어야 공부든 운동이든 할 수 있는데 독서실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이런 식사로는 무더운 여름을 버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숙모님과 사촌 동생들의 눈치도 보이고 해서 얼마 안 돼서 그만두었다.

 

 

이런 사정을 아시고 아버님은 식당 식권을 사주셨다. 그런데 이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공부 스트레스로 신경성 위장병에 걸린 것이다. 한동안 고향집에서 머무르며 심신을 달렸다. 그리고 다시 학원과 독서실로 돌아갔다. 공부를 포기할 수 없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2년째 되어가는 해에 작은 아버님들은 아버님께 조카 공부 그만시키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장남인 아버님은 고향에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셨다. 힘든 농사 일과 함께 고집불통에다 심술쟁이 셨던 조부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며 모진 인생을 사셨다. 없는 살림살이에 자식이 늦게 공부한다고 했으니 그 마음에 어찌 편했겠는가.

 

 

숙부들 생각에 조카 공부를 시키면 조부님 봉양에 소홀해질까 염려되어서 조카가 공부하는 것에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단호하셨다. 지식이 공부하겠다는데 어찌 뒷바라지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내 자식을 공부시키겠다는데  너희(숙부들)가 관여할 바 아니다."라고 말하며 숙부들의 의견을 무시했다. 아버님 교육열 덕에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비록 자식이 공부로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버님은 자식이 직장 잡고 사회생활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아 잘 사는 모습에 행복해하셨다,

 

 

못난 지식을 믿어 주고 지지해 주고 기다려 주셨던 하늘 같은 아버님이 있었기에 부족한 한 인간이 인간답게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기틀을 제공해 주신 아버님, 그 은혜는 어찌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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