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머님 외출신청하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다. 6시가 넘어 요양원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졌다. 간호사선생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보호자님."
간호사님의 핸드폰에 내 핸드폰 번호가 저장되어 있어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예, 선생님, 내일 어머님 외출신청하려고 전화드렸습니다."
"다음 주가 어머님 생신이라. 내일 파마해 드리고 점심 함께 먹으려고요."
고맙게도 간호사선생님은 친절하게 외출을 승낙해 주셨다.
어머님은 두세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신다. 어머님 파마머리가 풀어지면 머리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아 다시 머리를 라면처럼 꼬불꼬불하게 볶아야 한다.
병원에 입원하시는 동안 파마를 할 수 없었던 어머님은 짧은 생머리를 하고 계셨다. 난생처음 어머님 생머리를 보았다. 파마 약발이 떨어져 풀어진 생머리는 어딘가 낯설었고 보기 싫었다. 마치 선머슴 아이처럼 보였다.
다음 주 11월 2일 목요일이 어머님 생신이다. 내일 미용실에 모시고 가서 파마해 드리고 점심을 함께 먹을 참이다. 올해 어머님 연세가 84세이다. 치매에다 걷지고 못하셔서 지난 12월 요양원으로 모셔왔는데 가끔 집에 가자고 보채신다.
지난주 요양원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님이 집에 가신다고 하면서 보따리를 쌓시고 나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간호사는 어머님의 행동이 걱정돼서 보호자인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요양원에서 전화가 오면 어머님에게 무슨 일이 있냐 덜컥 겁부터 난다.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그런 걱정스러운 일은(넘어져 뼈가 부러졌다든지, 몸이 아프다든지 등) 아니었다.
그렇게 총명하시던 어머님은 4년 전(2019년 가을)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후 재활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 걷지를 못하신다. 이후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치매 증상까지 생겼다. 어머님의 기억이 뒤죽박죽 되어 앞뒤가 안 맞는 말씀을 종종 하신다.
누구나 늙으면 병들어 기력이 쇠해지고 기억력이 떨어진다, 그러다가 죽는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럼에도 늙어서도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아프신 어머님을 보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다음 주가 어머님 생신인데 특별한 선물은 준비하지 않았다. 대신 어머님을 이쁘게 꾸며드리기 위해 미용실에 가고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사실 어머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돈도 비씬 옷도 금반지도 아니다.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게 가장 값진 선물이다. 그리고 나이 드셨어도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게 여자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어머님 라면머리하러 내일 미용실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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