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놀이터에서 꼬마 둘이 그네를 타고 있었다. 오빠는 3살, 여동생은 2살 정도 되어 보였다. 그네를 밀어주는 아빠의 모습에서 애들에 대한 아빠의 사랑이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저녁 시간, 식당 창문 쪽에 엄마. 아빠. 아들, 딸 등 네 식구가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2살쯤 된 오빠와 누이는 연년생이거나 쌍둥이처럼 보였다. 애들에게 음식을 먹여 주고 보살피는 자상한 엄마의 모습에서 모성애를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부모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녀가 대학 졸업하고 취업할 때까지 아이의 뒷바라지에 보통 부모들은 온갖 용을 다 쓴다. 이게 끝이 아니다. 결혼하여 독립한 자녀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게 우리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인간의 종족 번식 본능 때문일 것이다. 어째서거나 모든 부모는 자녀를 애지중지 키우며 나중에 능력 있고 바른 사람으로 자라길 소망한다.
그런데 말이다. 부모가 공주처럼 왕자처럼 보살피고 키웠는데 부모 바람대로 자녀가 왕자같이 성장하고 공주처럼 멋있게 컸을까..
왕자, 공주는커녕 재 앞가림 못하고 밉상으로 성장한 자녀가 많다. 성인이 되어 능력도 안 되는 게 과소비하고 술, 담배, 약물에 중독되어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니면 다행이다.
혹시, 부모의 의도와 다르게 성실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근면은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반납한 채 게으름을 친구 삼아 변명과 핑계, 자기 합리화로 중무장하여 살지는 않는가.
부모가 지극 정성으로 보살 펴준 시기에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한다. 즉 부모의 돌봄을 받은 기간에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키워 부모가 원하는 그런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 공주, 왕자는 고사하고 주제 파악하지 못하고 남의 눈치 보며 근근이 살아가는 인간은 절대로 되지 말자.
능력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인성도 성품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배우고 경험하고 실수하고 깨달아서 자신을 올바르게 성장시키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야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로부터 왕자, 공주처럼 대우받듯이 사회에서 그처럼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은 본능적이지만, 성인이 된 우리는 스스로 자립하여 멋있고 유능한 왕자, 공주처럼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다 잘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왕자, 공주처럼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니까. 그 자긍심으로 근면 성실하고 바르게 살면 된다.
PS) 부모 등 가족 사랑을 받지 않고 자란 사람은 논외로 하겠다.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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