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을을 타는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성에 빠질 여유는 나에게 사치에 가까웠다. 나에게 가을 분위기를 즐기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는 장면이었다.
그런데도 요즘 마음이 무겁고 어둡다. 몸은 처지고 의욕이 밑바닥이다. 이런 침울함은 거리에 뒹구는 낙엽 때문도 아니고 차가워진 기온 탓도 아니다. 원인은 역시 중환자실에 계신 어머님 때문이다. 어머님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이다.
저녁 6시가 넘어 동료와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어머님이 입원한 사실을 알고 있는 동료가 어머님의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어머님이 중환자실에 계시고 아직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며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 오면 겁이 난다고 말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간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간호사는 간염 수치가 높아 검사를 했는데 문제가 없으며 흔들리는 앞 이를 발췌했는데 비급여 비용이 발생된다고 알려주었다.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걱정되고 기분이 가라앉고 마음이 심란해진다. 어머님이 위중한 것은 사실이고 자식으로서 마음이 아프고 신경이 쓰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잠깐 어머님을 잊다가도 갑자기 걸려 온 병원 전화가 중환자실에 계시는 어머님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면 나는 또 침울해진다.
나부끼는 바싹 마른 낙엽, 차가워진 가을바람 그리고 외로이 떠 있는 초승달이 나를 위로하지만, 위안은커녕 어둡고 칙칙한 날씨처럼 차갑게 내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이 우울하고 어두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명랑하고 즐겁고 흥미롭고 활기가 넘치는 생활을 간절히 원한다. 아프신 어머님 핑계 대지 말고 나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우울과 친한 척하며 의욕 없는 생활을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머님도 자식이 의기소침하게 지내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님은 비록 자신이 중환자실에 계시지만 아들이 항상 맑은 얼굴로 재미나게 살기를 원할 것이다.
때가 되면 다 지나가고 가족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 그리움과 연민이란 추억의 가족 비디오만 남을 것이다. 이 비디오 필름은 사이사이 불규칙하게 끊어진 모든 추억을 온전히 못 담은 불량품일지라도 가족의 희로애락을 보여줄 것이다.
어머님을 위해서나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울이란 더러운 흙탕물에서 빠져나와 눈부시게 밝은 햇살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먼 훗날에 그런대로 괜찮은 추억을 떠올려 주는 가족 비디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족 비디오 테이프에는 꼭 즐거운 일만 담겨있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웃는 장면도 나오고 우는 장면도 촬영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눈물 없는 가족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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