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사오십 년 전에, 그러니까 1970년대에,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와 시골집의 중간쯤에 우리 논과 밭이 있었다.
논은 신작로(비포장도로)를 따라 길에 늘어져 있는 천수답이었다. 즉 폭이 좁은 계단식 논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골짜기 물로 아버님은 이곳에서 어렵사리 벼농사를 지으셨다.
밭은 천수답 위쪽 높다란 곳에 널찍하게 펼쳐져 있었다. 밭 끝자락에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작은 아버님의 묘소가 있었는데 추석에 성묘 코스였다.
우리가 걸어 다녔던 도로 쪽에서 바라볼 때 우리 논밭의 왼쪽과 위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오른쪽은 뻥 뚫린 들판이었다.
어머님은 그 밭에 고추, 감자, 고구마, 오이 등을 재배하셨다. 하굣길에 밭에 가곤 했었는데 어머님이 따 준 오이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님은 수건을 둘려 쓰시고 밭일하시는 그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아버님은 그 밭에서 수확한 고구마를 소달구지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도 있다. 고구마는 겨울에 우리 식구들의 간식거리였다. 구워 먹고 삶아 먹고 생으로 깎아 먹었다. 눈 속에 고구마를 얼려다가 먹기도 했었다.
내가 중학교 졸업할 무렵에 아버님은 이 천수답과 밭을 파셨다. 그 후 어머님은 가끔 논밭을 파셔서 속이 후련하다고 하셨다. 논과 밭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부모님은 농사짓기가 불편하고 귀찮았던 것이었다.
나중에 작은 아버님의 묘소는 조부모님 묘소 옆으로 이장하여 현재 우리 형제가 관리하고 있으며 밭 위쪽 산 너머에는 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그 전답에는 이름 모를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한마디로 버려진 땅이 되어버렸다.
시골에 고급 승용차가 불이 났게 골프장을 들락거리는 모습과 풀밭으로 변해버린 전답이 대조적이다. 한가한 시골 산골짜기에 한쪽은 골프장이 들어서 지역 명소가 되었고 그 옆에 붙어 있는 예전의 우리 전답은 아프리카 원시림이 되어 버렸다.
가끔 이곳을 지날 때마다 혼자서 힘들게 일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 나이 50대가 되고 보니, 아 그때 그곳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일하시던 어머님이 무척이나 젊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젊은 어머님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팔순이 넘어 병원에 누워 계신다. 의식도 없다. 꼬집고 큰소리로 어머님을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다. 어머님의 젊은 시절은 흘려가 버렸고 어머님에 대한 아련한 추억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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