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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식이 희소식

가족

by kddhis 2025. 6. 1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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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직장 동료여서 특별하지 않으면 구내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어제도 다정한 연인처럼 옆에 나란히 앉아 창밖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푸른 공원과 주변 경관을 힐끗 바라보며 식판에 담아 온 국과 밥, 반찬 3-4가지 그리고 숭늉을 먹었다.

 

 

하루 전 일인데도 도통 어떤 종류의 국과 반찬들이 나왔는지 기억에 나지 않는다. 아마 다음에 이야기할 그 당시 긴급한 상황이 음식의 기억을 집어삼켜버렸을 것이다. 

 

 

테이블에 앉은 지 15분도 채 안되어 나보다 먼저 식사를 마친 아내가 진지하게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어 누구와 무슨 내용으로 통화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아내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아내는 전화를 끊고 내가 통화내용을 묻기도 전에 어머님이 계시는 요양원 간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어머님이 정기건강검사를 받았는데 결핵이 의심된다는 검진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요양원 간호사가 오늘 당장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안절부절못하며 서둘러 식당을 나섰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아내는 어느 병원으로 몇 시에 갈 것인가를 요양원 간호사와 통화하며 주차장에 이르러 병원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희미한 의식만 있을 뿐 식물인간처럼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시기에 병원에 가려면 구급차를 타고 가셔야 할 정도로 위중한 중환자이시다. 갈 병원이 정해지자 아내는 민간구급차를 호출했고 우리는 병원 응급실에서 어머님이 오시길 기다렸다.

 

 

우리가 병원에 도착한 지 10여분쯤 지나서 구급대원 2명은 움직이지 않도록 어머님을 고정시킨 바퀴가 달린 이동식 침대를 우리가 서 있는 응급실 쪽으로  밀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어머님은 눈을 감은채 자는 듯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머님은 미동도 없고 얼굴은 고요했다. 아마 어머님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어째서 여기 응급실에 왔는지 조차도 모르실 것이다.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문제가 터졌다. 응급실에서 어머님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응급실에 들어가려면 응급실 오기 전에 응급실 입원이 가능한지 연락하고 와야 하는데 응급실에서는 어머님에 대해 연락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핵 판정 시 격리 입원실이 이 병원에는 없기에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황당했다. 요양원에서 가능하다고 해서 이병원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왔는데 입원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응급실 의사로부터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내는 요양원 간호사에서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간호사는 병원관계자(부장이라 호칭) 통해 어머님 입원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이 병원으로 안내를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 요양원 간호사, 응급실 관계자 등은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발생했는지 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간호사가 연락한 병원의 부장이라는 사람이 결핵환자 입원이 불가능한데도 가능한 것으로 간호사에게 잘못 안내한 것이다. 

 

 

뒤늦게 그 부장이란 사람이 이 병원은 결핵환자 입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가 있는 응급실 앞으로 내려와서 자기 어머님도 요양원에 계신다며 자신이 잘못 안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제대로 사과는 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병원관계자인 부장은 참 무책임한 사람이다. 부장은 자신의 어머님이 계시는 요양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요양원 간호사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것 같다.

 

 

결핵환자 입원은 모든 병원에서 받아주는 것은 아니 없다. 결핵은 전염성이 강한 병이기에 특정 병원에서만 격리 병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때 알았다. 병원 부장으로부터 잘못 전달받은 정보로 우리에게 잘못 안내한 요양원 간호사가 무슨 책임 있겠는가.

 

 

다행히 간호사가 결핵환자 입원이 가능한 국립종합병원에 3일 후 검진예약을 해주었다. 우리는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셔다 드렸다. 물론 구급차가 어머님을 싣고 갔다.

 

 

지난해 10월 말 그리고 올해 1월  두 번 연속 어머님이 위독하셔서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모시고 갔고 그때마다 마음 졸인 아픈 기억이 어제 다시 우리 가슴을 몸서리치게  했다.

 

 

올 1월 이후 약 5개월 동안 어머님이 아무 탈 없이 잘 지내셨는데, 갑자기 요양원에서 어머님 병환으로 연락이 온 것이다. 요양원에서는 어머님에게 아무 일 없으면 우리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처럼 어머님에게서 연락 없는 것이 우리에게는 희소식인 셈이다. 

 

 

낮에 한바탕 소동을 치른 어제저녁, 아내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는 두 아들에게 요 며칠간 연락이 없다며 이 역시 두 아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증거라고 나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왔다. 두 아들에게 아무 일 없으니 연락도 없다며 안도하는 아내지만 그럼에도 두 아들을 둔 아내는 여전히 얼굴에 자식 걱정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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