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올림픽이 개최되던 그 해, 아버님이 처음으로 경운기를 사셨던 봄날, 나는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독서실에서 먹고 자고 공부만 했다. 안 되는 공부 억지로 하려니 지겨웠지만 젊음 하나로 버텼다. 그러나 그 젊음이란 무쇠도 3년 독서실 생활에 무너졌다. 몸이 망가진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체는? 위장이다. 어디서 배웠냐고? 경험에서 알았다. 스트레스는 소화 장애를 불러온다. 그때 밥을 먹으면 위장에 차곡차곡 벽돌이 쌓여가는 느낌이 들었다. 소화불량인가 싶어 소화제를 먹었다. 소용이 없었다. 혹시 운동하면 나아지려나 생각해 미친놈처럼 뛰어다녔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 시절 위장 내시경 검사를 2번씩이나 받았다. 검사결과는 신경성 위장염. 스트레스로 위장병이 생긴 것이다.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일까. 중고교 6년치 공부를 단시간에 배우려고 달려들었다. 수학은 초등학교 도형의 성질부터 영어는 중학교 1학년 교과서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공부다운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 집중력과 이해력이 형편없었다. 돌 머리로 시작한 공부. 그러니 공부가 잘 될 리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죽어라고 했는데 학습 진도는 거북이걸음보다 늘였고 공부한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공부시간 대비 성적이 나오지 않아 불안했다. 책을 읽지 않아 배경지식이 부족했으며 문해력이 뒤받침 되지 않아 이해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배경지식과 문해력 부족 때문에 죽어라 공부했었도 성적이 올라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공부가 되든 안 되든 그냥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읽고 쓰고 문제 풀기를 반복했다. 인생 리셋하는 방법은 공부밖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그래서 얻는 게 뭐냐고? 대학교 입학은 고사하고 병만 얻었다. 그렇게 못난 내 청춘이 허무하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비바람에 홀로 앉아 있는 새처럼 외롭고 두려웠다.
해질 무렵 어느 날, 아픈 육신을 추스리려 고향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갑자기 혀가 말리며 입이 돌아가는 뇌신경 질환이 나타났다. 급히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 아, 이제 끝이구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켜졌다. 다행히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말린 혀와 꼬인 입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입이 한쪽으로 삐뚤어지는 ‘구안와사’ 증상까지 불러왔던 것이다.
심하게 아픈 후, 나이 때문에 대학입학이고 나팔이고 이제는 먹고사는 민생고가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취직을 했다. 해놓은 공부는 어디 가지 않았다. 3년 공부 헛되지 않았다. 그 실력으로 안정된 직장에 들어갔다. 그렇게 20대 끄트머리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가슴 저린 못난 내 청춘은 그렇게 흘려갔다. 그럼에도 피다 만 꽃이 된 내 청춘을 사랑하는 이유는 새파란 청춘의 시간을 뜨겁게 불살랐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한 인간의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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