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아들을 버스 터미널에 바래다준다고 하고, 아들은 한사코 혼자 가겠다고 하면서 서로 실랑이를 한 끝에, 결국 아내는 둘째를 터미널에 데려다주었다. 엄마의 자식사랑이 정겹다 못해 눈물겹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아내는 설 연휴를 맞아 집에 온 큰아들을 위해 본인이 직접 만든 명절 음식(동그랑땡, 육전 등)을 쇼핑백 세 개에 나누어 담아 들고, 승용차로 첫째를 터미널에 데려다주고 왔다. 이번만 그런 게 아니다. 아내는 두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집 떠난 이후부터 아이들이 잠깐 집에 왔다가 다시 객지로 떠날 때마다 아이들을 배웅해 주고 있다.
아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이런 행동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우리 어머님도 그랬으니까. 그것은 자식에 대한 일방적인 엄마의 순고한 사랑일 것이다.
내 어머님도 내가 시골 고향에 가는 날이면,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와 오이무침 등 밑반찬을 만들어 놓으시고 나를 기다리셨다. 그리고 떠날 때는 사과 박스에 김치를 포함하여 각종 농산물을 한가득 담아 주셨다.
우리는 고향 집에 아침 10시경에 도착하여 부모님과 함께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다음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 고향 집을 나섰는데, 그때마다 아버님 어머님은 항상 대문밖까지 나오셔서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벌써 7년 이전의 일이 되었다. 약 7년 전에 어머님이 아프신 이후부터는 어머님 병문안 가는 게 일상이 되었고, 그로부터 6개월 후쯤에는 아버님마저 세상을 떠나셔서 고향집은 주인 없는 집이 되었다. 그 이후 아버님, 어머님이 우리를 위해 농산물을 싸주는 일도 없어졌고 배웅해 주는 부모님의 모습은 지난 과거가 되어버렸다.
아내가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음식을 챙겨주고 터미널까지 데려다줄 수 있을까. 언젠가는 우리 아버님, 어머님처럼 우리 부부도 늙고 병들면 그렇게 못할 텐데,
아내는 건강하게 살아있는 그날까지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서 아이들 곁에 살고 싶은가 보다. 그래서 머지않은 시기에 아이들이 사는 도시로 이사 갈 계획을 진작에 세워 놓았다.
이처럼 엄마의 자식 사랑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철벽처럼 보인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장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생로병사다. 어찌하겠는가, 인정할 건 (늙고 병들고 죽는 것) 인정하자. 그러니, 살아있는 그날까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요즘 나는 밤이면 밤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나고 병상에 누워 계신 어머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 어머님과 아내의 모습이 겹쳐 보일 때도 있다. 두 여성에게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이 있다는 공통점 말이다. 단지 두 여성이 다른 점은 살아가는 시대가 다를 뿐이다.
언젠가 우리 부부도 아버님 어머님처럼 이 세상과 작별할 날이 올 것인데, 그때까지 가족끼리 정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며 화복 하게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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